번쩍이는 청소솔로 반짝반짝 청소하자
여름철 미끄러운 바닥이끼
내가 일하는 화훼단지 매장은 바닥재가 회색빛 콘크리트 블록으로 되어있다.
흙바닥이 아니어서 물에 오래 젖거나 흙과 다양한 오염물이 달라붙지 않는다.
다만 자주 바닥에 화분과 식물포트를 내려놓은 채 물을 주거나 물청소를 하다 보니 사방으로 초록이끼가 생겼다.
짙은 녹색의 멍처럼 점점 커지던 이끼는 습하고 더운 여름이 되자 바닥곳곳에 빠르게 번지기 시작했다.
비닐하우스 안은 천장 환기창을 열고 출입문을 활짝 개방해도 먼지와 습도가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해안가 바위에 달라붙은 돌미역처럼 이끼가 점점 짙어지며 층이 쌓이는 게 느껴진다.
습기는 높고 환기는 잘 되지 않으니 곰팡이 번지듯 이끼도 자라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출근한 몇 년 동안 누구도 이끼를 건드리지 않았다.
바닥에 물을 뿌려도 금방 마르기에 아마도 별 신경을 쓰지 않은 듯하다.
식물분갈이 후 어쩔 수 없이 바닥에 화분을 내려놓은 채 물을 주게 된다.
자연히 물바닥 거울이 되어 주변환경을 모두 회색으로 비춘다.
어느 날 화분에 물을 주던 중 바로 옆에서 쿵하는 큰소리를 들었다.
무겁고 큰 화분을 들어 테이블 위 높은 자리에 올리려던 사장이 이끼를 밟고 순간 미끄러지며 화분을 세게 내려놓은 것이다.
다행히 사장도 다치지 않았으며 화분도 깨지지 않았다.
둘 다 많이 놀라 녹색 이끼 위에 발을 살짝 올려보니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더 이상 기름 바른 듯 미끌미끌한 이끼바닥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직원이 넘어지거나 손님이 사고를 당할 수 있으므로 방안이 필요했다.
이끼를 제거할 큰 청소솔이 필요했다.
당연히 바닥청소는 쓸거나 물청소만 해왔기에 바닥을 비빌 청소솔 같은 청소용품이 있을 리 없었다.
새로운 청소도구가 필요했다.
다이소 daiso 낙성대점
퇴근 후 동네 다이소 낙성대점 매장에 들렀다.
매장 외벽에 층별 안내 정보가 적혀있다.
3층이 욕실, 청소, 세탁, 수납 등 청소용품이 진열되어 있는 장소다.
곧바로 시원한 매장으로 들어가 계단을 걸어올라 3층으로 진격한다.
안쪽 깊숙이 들어가니 여러 가지 청소솔이 진열돼 있다.
작은 솔, 큰 솔이 종류별, 가격별로 다양하다.
대체로 작은 크기의 도구들은 1,000원, 큰 사이즈는 2,000원 이상이다.
내가 찾는 청소솔은 바닥에 살짝 무릎을 굽힌 채로 이끼를 제거할 수 있는 강모와 손목에 피로가 적은 형태의 손잡이다.
그러기 위해선 주먹만 한 헤드와 고양이 꼬리처럼 공중으로 치솟은 긴 손잡이가 필요했다.
몇 가지 후보를 놓고 잠시 고민하던 중 하나의 도구에 완전히 눈길을 내어주었다.
은빛으로 번쩍이는 크롬도금 청소솔이다.
매장 테이블 밑 어두침침한 공간에서는 눈에 잘 띄어야 손이 자주 나간다.
매력 있는 아이의 소비자 가격은 정가 2,000원이다.
이 정도 가격과 사이즈면 녹색카펫 이끼와 싸울만하다.
토르가 묠니르망치를 들어 하늘의 번쩍이는 힘을 받듯, 너의 진짜 주인은 나라는 듯 손잡이를 꽉 잡아 들었다.
손아귀에 느껴지는 묵직함과 가벼운 무게가 비교되며 만족감이 오른팔로 전해졌다.
이때부터 어서 빨리 이끼를 제거하고 싶은 열망이 타올랐다.
빨리 출근해서 헤드솔을 이끼면상에 박박 문지르고 싶었다.
2000원의 가성비, 크롬도금청소솔
출근 후 아무도 없는 매장 안 사무실 테이블에 다이소 청소솔을 올려놨다.
번쩍이는 외형이 마음에 든다.
쥐색처럼 보이는 회색모가 빳빳하다.
손에 들어보니 확실히 가볍다.
무게가 조금 더 나가거나 손에 쥐는 형태가 달라지면 피로도에 따라 청소 중 반복적으로 쉬어야 한다.
쉬지 않고 단 한 번에 이끼제거를 클리어하고 싶다.
더운 아침부터 청소에 에너지를 몰아 쓰면 하루가 고달파진다.
청소용품을 고르는 일은 그러한 이유로 신중해야 한다.
빛에 반응해 눈에 띄는 크롬도금 청소솔을 고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일반적인 플라스틱, 나무로 된 청소도구의 경우 자주 쓰거나 오래되어 사용감이 묻어나면 청소도구 몸체가 지저분해진다.
청소가 끝난 후 청소도구를 다시 세척하는 일이 번잡한 일거리다.
물론 자주는 아니지만 지저분한 도구를 보이지 않을 곳에 치우고픈 마음이 생긴다.
크롬도금은 광택이 돌다 보니 사람의 지문 외에는 크게 묻어나지 않으며 위생적으로 보인다.
더욱이 물청소용 제품이어서 사용 후 물만 뿌려둔 채 벽에 기대어 세워주면 자연히 물이 빠지며 마른다.
실용적이고 간단하게 쓸 수 있는 도구가 사람 곁에 오래 남아 손에 쥐어진다.
청소를 위해 만들어졌으나 스스로는 관리가 필요하지 않은 도구.
어차피 사람손에 태어난 모든 제품은 소비제다.
한 번만 쓰여 버려지는 일회용의 목적이 있고, 제품의 완성도와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길들여지며 혹은 개조되어 청소하면 딱하고 생각나는 도구.
저렴한 가격의 싸구려라고 눈치 받는 외형을 가진 제품도 쓰는 이의 기술과 방법에 따라 명품이 되기도 한다.
설명서 없이 구입 후 바로 실전에 투입될 수 있는 제품이 진짜 편리한 청소도구다.
로봇청소기가 등장해 인간대신 구석구석 깨끗이 바닥을 자동청소하며 청소도구의 새로운 혁명을 불러왔다.
허나 여전히 사람에게는 게으름을 벗어나 아날로그 도구로 근육에 힘을 주며 벽과 바닥을 때 밀고 싶은 욕망이 있다.
바닥청소 물이끼제거
회색 콘크리트에 푸른 숲을 문신한 듯 녹음이 져있다.
물기와 습기가 없을 때는 위험성을 숨기고 있지만 물이 닿아 고유의 본성이 드러나면 누구라도 넘어뜨릴 듯 미끄러워진다.
물귀신 아닌 이끼귀신이 사람 발목하나 잡고 넘겨드릴 기세로 숨죽여있다.
오랜 시간 동안 눈으로 지켜만 봤기에 이제 이끼 때를 벗겨야겠다.
날씨가 더 더워지면 땅의 열기를 식혀 내부온도를 낮추기 위해 바닥이 마를 때마다 물을 뿌린다.
아마도 놈은 물이 닿은 곳까지 사방으로 조금씩 보금자리를 넓힐 것이다.
이끼가 서식하는 자리에 물호스로 촉촉이 물을 뿌렸다.
수분을 머금고 생명력을 얻어 살짝 불 때까지 기다렸다.
물샤워를 한 이끼색이 점점 선명해진다.
다이소 크롬도금청소솔 손잡이 꼬리를 손에 쥐었다.
살짝 몸을 낮추어 청소솔 머리가 바닥과 평형을 이루도록 모를 밑으로 눌렀다.
천천히 살살 적당한 힘을 주어 앞으로 밀었다 뒤로 당기기를 반복한다.
청소솔 회색모가 걸림 없이 부드럽게 휘어지며 움직였다.
조금씩 바닥에서 짙은 멍이 사라지며 희미해졌다.
이끼가 모에 갈리며 작은 녹색거품이 일었다.
점점 청초록에 회색을 섞은 듯한 발색이 드러났다.
칫솔질하듯 더 힘을 주어 이끼 때를 밀었다.
붓질하듯 지나간 결이 보인다.
호스를 들어 속이 비치는 물을 바닥으로 뿌렸다.
작은 물줄기가 모여 큰 물결이 뿌연 이끼땟물을 밀어냈다.
살짝 뽀얀 회색 콘크리트 바닥 맨살이 드러났다.
묵은 때를 벗기듯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가만히 발을 뻗어 신발을 그 위에 올려본다.
살짝씩 밑창을 비비니 미끄러짐 없이 마찰이 생긴다.
이 정도의 재능을 가진 도구라면 화장실 바닥타일 물 때와 곰팡이 제거에도 적합하다.
오래되고 물이 들어 이끼물이 빠지지 않는 변색 부분은 있으나 눈에 띄게 사라졌다.
도구하나에 용기를 얻은 나는 다음 스폿을 찾아 걸음을 옮긴다.
오른손에 힘을 풀어 나른하게 솔을 움직인다.
이미 우리는 한 팀, 한 몸이다.
나는 도구의 타고난 신체를, 도구는 나의 힘을 전기처럼 끌어와 자신의 쓰임새를 뽐낸다.
조금은 열정적인 듯 정숙하게 일을 하는 청소솔이다.
가지런하지만 화려하지 않은 회색솔에 유려하고 단단한 바디가 돋보인다.
이끼제거가 끝나 솔을 관찰하니 작은 이끼들과 바닥의 이물질들이 솔사이사이에 진드기처럼 달라붙어있다.
무생물이지만 살아있는 듯한 녀석이다.
"고생했다." 한 마디를 조용히 해준다.
물수압을 올려 청소솔에 물을 뿌린다.
내 에너지와 바닥마찰로 달궈진 청소솔에 차가운 샤워로 몸체의 열기를 식혀준다.
청소도구를 청소하는 기분은 특별하다.
그야말로 청소의 마지막 단계이자 도구에 대한 정중한 예의다.
도구는 흠뻑 젓어 물줄기가 손잡이를 타고 흐른다.
기름을 바른 듯 온몸이 번쩍거린다.
손목을 꺾어가며 머리 털듯 청소솔을 돌려준다.
크롬도장이 빛을 난반사시키며 물을 사방으로 튕겨낸다.
청소가 끝나 잠시 숨을 돌리러 밖으로 나온다.
하늘에서 비가 조금씩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세상이 물청소하는 날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