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다. 아직 퇴사가 아니다. 그냥 흔한 퇴근이다. 날씨가 서늘할 때는 해도 같이 퇴근하느라 좀처럼 마주칠 일이 없다. 집에 도착하면 완전히 컴컴한 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자동으로 불이 켜지고 외출 중으로 설정해놨던 방 온도가 올라간다. 스마트 시스템이란 간편하고 좋은 것이다. 집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주니까. 얼음같이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시고 양말을 벗어 세탁통 안으로 던져 넣는다. 답답한 겉옷과 사회에서 어른이라 겉치장한 체면과 자존심까지 서둘러 벗어버린다. 이제 몸에 걸친 건 속옷과 며칠 동안 쌓인 피곤뿐이다. 웬만해선 피곤은 벗겨지지 않는다. 마치 물에 젖은 양말처럼. 힘겹게 벗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도 피곤의 무게는 남아 몸 한구석에 걸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