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3

추운 겨울 월동하는 사람

나는 정말로 추운 게 좋다. 덥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꾸물한 날씨다. 매장에서 한가로이 있을 즈음 한 손님이 들어와 물었다. "월동 가능한 식물이 있나요?" 월동이 가능한 식물은 많다. 한국의 기후를 견뎌내는 자생종이나 야생화등이다. 하지만 그런 식물은 가을이 깊어져야 시장에 나오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매장에 진열된 식물들도 열대식물들 위주라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모두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실내에 있더라도 습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병에 걸린다. 월동 가능한 식물이라도 작은 화분에 심어진 어린아이 같은 개체들은 추운 겨울을 밖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얼어 죽는다. 땅에 심겨 대지의 기운을 받거나 어느 정도 목대가 굵어진 식물들만 봄을 볼 수 있다. 손님과 몇 마디를 더 대화하고 나는 다시 ..

에어컨 바람과 제주

여름을 여름처럼... 나는 집에 에어컨이 없다. 무더운 여름의 한 낮과 눅눅한 열대야 밤에는 딱 오징어 숙회처럼 말랑말랑 해져있다. 몸이 그렇게 뻗어버리니 정신이 말짱 할리가 없다. 천장만 쳐다본 채로 어서 온도가 식기를 기다릴 뿐이다. 가끔 너무 더울 때는 어느 겨울날, 출근길에 체험한 가장 추운 한기를 기억과 감각 속에서 꺼내온다. 짧은 순간이지만 영하의 온도를 몸속에 비축한다. 나의 뇌는 겨울과 여름을 오가며 계절에 속고 또 속는다. 머리 위에는 벽걸이 선풍기가 돌아가고 바닥에는 써큘레이터와 휴대용 무선 선풍기가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3대가 나를 둘러싼 채로 바람을 불어낸다. 에어컨의 냉기보다는 약하지만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대니 기분이 좋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에 들것이다. 나에겐 작은 소망이 ..

나의 계절은 제주에 있다

이제 날씨가 따뜻하다. 봄이 진짜로 왔나 보다. 여전히 이른 아침에는 서늘하고 오늘은 비가 내려 차가웠지만 봄은 봄인가 보다. 내 인생에도 봄이 있었을까? 20대 때 분명 그 계절을 붙잡을 기회가 있었지만 난 잡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후로 오랫동안 기나긴 겨울이었다. 혹독한 현실에 너무 추워서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간 내 꿈들은 탐욕스러운 뱀들과 함께 동면에 들어가야 했다. 아주 오랫동안 꿈들은 땅 위로 드러나지 않았다. 어느새 난 그 존재들을 잊고 살았고 노동으로 돈을 벌기 위해 사는 보통의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렇게 보통의 날을 살아가던 어느 날 제주를 알았고 난 깨달았다. 지금 내 삶에 그 계절이 지나가고 있다. 이제 놓치면 10년 후에 올지 아니면 이제 끝인지 알지 못한다. 꽁꽁 얼어버린 땅을 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