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3

나는 왜 제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가야 할 목적지가 생겼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제주로 갈 거면 왜 제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물론 부모가 제주사람이 아니고 나를 키우시다가 제주로 이사하지 않은 이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애초에 나는 왜 서울에서 태어났나? 서울과 제주는 위치상 거의 끝과 끝이다. 바다와 하늘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자연의 땅. 나의 어릴 적에 옅게 흔적처럼 남아있는 기억에는 동네에 커다란 과수원과 어른 키보다 큰 풀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가득했던 꿈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 당시에는 분명 시멘트 담벼락이 아닌 녹색의 풀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높은 풀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고추잠자리들이 항상 앉아있었고, 나는 기다란 잠자리채로 녀석들을 낚아채러 돌아다녔었다. 동네 길바닥에는..

제주에서는 물리지 않기를

밖에서 물린 것과 안에서 물린 것 아침에 일찍 잠에서 깨고 잠깐 딴짓을 하다 다시 잠이 들었다. 어깨에서 뭔가가 기어 다니는 촉감이 느껴졌다. 갑작스러운 소름과 함께 손으로 어깨를 툭 쳤고 그 순간 피부를 물어버렸다. 주위를 둘러봤지만 나를 문 벌레는 보이지 않았다. 어떤 것이 나를 물었을까? 고통은 꽤나 강했고 아직도 어깨가 주사에 맞은 듯이 얼얼하다. 모기를 제외하면 정말 오랜만에 물린 듯하다. 그래도 괜찮다. 오랜만에 느껴본 감각이라 무뎌진 신경이 살아난 느낌이다. 다만 나도 모르게 환상을 느낀다. 자꾸 이불이나 방바닥 어딘가에 나를 문 벌레가 돌아다니는 느낌이 들어서 수시로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꿈에서 귀신을 보거나 무서운 영상을 보고 나서는 자꾸 어두운 방 한 구석을 관찰하는 모양새다. ..

제주는 기회다

나는 내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 몇 달 사이 블로그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잔잔한 추억들을 다시 캐내었고 찾아내었다. 분명 잊고 살았는데 기억은 그대로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찾아주기를 기다렸나 보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들이 예전 기억들을 뒤로 밀어냈으리라. 그래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주었다. 그것이 불행한 기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그 생각들을 떠올리면 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과거를 연대순으로 떠올리면 우리 동네의 어느 지점에 도서 대여점과 비디오 가게가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다. 작은 문방구들과 구멍가게가 어디 있었는지, 아이들이 엄마 몰래 찾아가던 오락실들의 위치도 알고 있다. 마치 비밀지도처럼 내 머릿속엔 그 시절의 가게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표시되어 있다. 그립다.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