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나는 왜 제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낮가림 2022. 8. 1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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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할 목적지가 생겼다.






오늘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제주로 갈 거면 왜 제주에서 태어나지 못했을까?
물론 부모가 제주사람이 아니고 나를 키우시다가 제주로 이사하지 않은 이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애초에 나는 왜 서울에서 태어났나?
서울과 제주는 위치상 거의 끝과 끝이다.
바다와 하늘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세계적으로도 특이한 자연의 땅.




나의 어릴 적에 옅게 흔적처럼 남아있는 기억에는 동네에 커다란 과수원과 어른 키보다 큰 풀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가득했던 꿈같은 이미지가 있다.
그 당시에는 분명 시멘트 담벼락이 아닌 녹색의 풀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높은 풀의 꼭대기 펜트하우스에 고추잠자리들이 항상 앉아있었고, 나는 기다란 잠자리채로 녀석들을 낚아채러 돌아다녔었다.
동네 길바닥에는 아스팔트가 아닌 옅은 시냇물이 졸졸 흘렀고 그 사이로 점프하였던 추억들이 조금씩 남아있다.
근데 이 기억들이 어릴 적 꿈인지 사실인지 확실하지 않다.
중요한 건 나이 마흔을 넘은 내가 초등학교 입학 전의 꿈같은 기억들을 동경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꿈 많은 도시가 아닌 한적하고 심심한 자연 속 삶을 기대하고 있었나 보다.
사실 현재 사는 집 뒤가 관악산 등산로다.
이 정도면 자연과 많이 가깝고 아침마다 새소리에 원하면 언제든지 산길을 산책할 수 있을 텐데라고 느낄지도 모른다.
내가 원하는 건 불특정 다수가 드나드는 등산로가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이 한그루의 나무와도 어우러지며, 바람이 뺨에 닿고 평상 위에 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삶이다.
그리고 눈을 들어 하늘을 봤을 때 높은 야자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싶다.




만약에 제주에서 태어났다면 나라는 사람은 서울을 동경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대로 서울에서 태어난 것인지도 모른다.
40년 넘게 살아보니 서울 별거 없지 하는 가르침이랄까?
그래 별거 없었다.
집이라고 해봤자 평생 같은 동네에서 반경 100m 정도로 옮겨 다닌 것 같다.
붉은 흙바닥이 굵은 돌멩이로 덮이고 시간이 지나 시멘트로 길이 회색빛으로 변했다.
다시 시간이 흘러 아스팔트가 그 위에 덮이고 길은 검게 변해버렸다.
동네의 길에 화석처럼 지층이 쌓여가는 과정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제주를 알고 나서 삶의 많은 면이 달라졌다.
일단 가야 할 목적지가 생겼다.
삶의 목적이 돈이나 행복 또는 이루어야 할 조금은 추상적인 대상이 아니라 실제 지도상의 위치가 되어 버리면 너무나도 선명해지고 단순해진다.
제주로 간다는 말에는 내 남은 인생과 행복이 모두 그곳에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내가 왜 제주에서 태어나지 못했냐면 제주를 발견하기 위해서였나 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제주에서 살았으면 제주가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을 수도 있다.
서울도 좋은 곳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와 욕망이 몰려있다.
이제는 제주로 내려가 나하고만 친해지고 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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