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 2

산고양이 똘이 마지막 작별인사

레고 블록처럼 항상 붙박이로 박혀있었던 낡은 종이상자가 사라지니 비로소 쓸쓸함이 다가왔다. 집 뒤의 관악산 수풀에서 매년 산고양이가 울었다. 산에서 태어난 어린 새끼들이 가끔 호기심을 지닌 채 산 밑으로 내려왔고, 매년 한 두 마리가 담을 올라와 문명과 야생의 선을 넘었다. 작은 산고양이는 산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그늘 밑 어둠 속으로 숨어 다녔다. 녀석은 그렇게 내가 사는 빌라의 작은 마당으로 스며들었고 이웃 아주머니가 먹이를 주며 보살피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시던 아주머니는 어린 녀석에게 고양이 사료와 물을 주었다. 옆 건물에서 풀어 키우던 집고양이들은 창문이나 열린 현관문틈 사이로 자주 드나들었고 빌라 마당까지 놀러 와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며 어..

제주배송

제주에서 느린 배송은 단점이 아니다. 난 특이한 버릇이 있다. 무언가에 꽂혀서 열심히 고르고 고른다. 그리고 택배가 열심히 집으로 배송되는지 체크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택배가 집으로 도착한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나랑 같은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택배 상자를 확인하고 뜯지 않는다. 물론 바로 뜯을 때도 있지만 며칠이나 몇 주를 묵혀놓았다가 뜯어본다. 지금도 뜯지 않은 택배가 두 박스가 있다. 그래서 그 택배박스를 볼 때마다 궁금증이 든다. 과연 저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내가 시킨 물건이 맞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에 빠져든다. 바로 뜯어서 다른 물건이면 교환이나 반품을 시키면 되는데도 꼭 시간을 끈다. 일단 집으로 도착하면 안심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그렇게 상자들은 집 한구석에 조용히 입을 닫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