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느린 배송은 단점이 아니다.
난 특이한 버릇이 있다.
무언가에 꽂혀서 열심히 고르고 고른다.
그리고 택배가 열심히 집으로 배송되는지 체크한다.
그토록 기다리던 택배가 집으로 도착한다.
여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나랑 같은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택배 상자를 확인하고 뜯지 않는다.
물론 바로 뜯을 때도 있지만 며칠이나 몇 주를 묵혀놓았다가 뜯어본다.
지금도 뜯지 않은 택배가 두 박스가 있다.
그래서 그 택배박스를 볼 때마다 궁금증이 든다.
과연 저 상자 안에 든 물건이 내가 시킨 물건이 맞을까 하는 이상한 상상에 빠져든다.
바로 뜯어서 다른 물건이면 교환이나 반품을 시키면 되는데도 꼭 시간을 끈다.
일단 집으로 도착하면 안심하는 마음이 있는 걸까.
그렇게 상자들은 집 한구석에 조용히 입을 닫은 채로 날 보고 있다.
이런 생각도 든다.
서울이나 수도권은 물건을 고르고 구매를 하면 정말 빠르게 배송이 온다.
보통 2일 이면 배송이 되고 늦어도 3일 정도면 배송이 된다.
요새는 당일 배송도 많아지고 새벽 배송도 많아져서 책이나 신선식품류는 당일이나 새벽에 바로 배송이 된다.
저녁에 주문한 상품을 누군가 내가 자고 있는 새벽에 집 앞에 조심히 갖다 놓는 속도는 아직도 놀라울 정도다.
물론 빨리빨리를 외치는 한국인 특유의 문화가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지만 어쨌든 소비자는 그만큼 편한 소비생활을 한다.
지금은 제주로 가기 위한 경제적 투자에 많은 비율의 현금을 넣고 있기에 예전만큼 쇼핑이나 먹는 데에 돈을 많이 쓰지 않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일주일에 몇 번씩 택배가 왔고 층층이 쌓여서 아파트가 된 박스들이 누워있는 나를 지켜봤었다.
서울생활의 편리함이 그렇게 만든 걸까.

제주에도 쿠팡이 있지만 모든 물건을 구매할 수는 없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이기에 그만큼 물류의 배송이 오래 걸리고 비용도 더 추가된다.
서울에서의 물가를 생각하고 가면 크게 당황할 수 있다.
그 작은 비용들이 합쳐져서 한 달 정도로 모으면 꽤나 많은 금액이 추가된다.
하지만 제주라는 아름답고 눈부신 자연을 가까운 거리에서 매일 보거나 바로 집 앞이 마음이 편한 자연이라는 것과 비교해보면 사실 그 정도 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니까.
지금 몸과 마음이 겪는 작은 아픔들이 제주에서 치유된다면 그런 것은 문제도 아니다.
제주에서의 느린 배송과 비싼 물가는 사실 서울에서 쓰는 술자리 비용이나 각종 먹거리의 유혹에 쓰는 돈에 비하면 낮은 리스크다.
제주로 가기에 얻게 되는 수많은 단점들이 있다고 유튜브에서도 보고 여러 글들을 통해 읽어봤다.
비싼 물가는 당연한 거라서 단점이 안되고 느린 배송도 당연한 거라서 단점이 될 수 없다.
육지사람을 배척하는 그런 문화가 있다고 말하는데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그런 감정들이 있다고 느껴진다.
동네에서도 그렇고 옆집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어딜 가나 있는 것이다.
악의적인 속셈을 가진 곳은 제외한다면 본인이 얼마나 진심되고 먼저 소통하는지에 따라서 다르다고 본다.
그런 게 싫으면 사람 없는 떨어진 곳에 혼자 살아야 한다.
글이 이상한 데로 빠졌는데 어쨌든 내가 제주에서 주문을 한 상품이 육지를 넘어 바다를 건너고 나에게 온다면 정말 두 팔 벌려 환영을 하고 바로 뜯어보지 않을까.
그런 기대감과 상상으로 오늘도 제주생활을 그려본다.
이제 박스를 뜯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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