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 3

제주와 야자수 나무

내가 깨달은 제주를 대표하는 세 가지는 바람, 삼다수, 야자수 나무다. 나는 야자수 나무를 볼 때마다 묘한 감정에 빠진다. 서른이 넘은 후에도 야자수 나무는 영화나 사진으로 본 하와이나 멋진 섬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휴양지에만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를 보면 거대한 항공기가 미지의 섬에 추락하여 살아남은 사람들끼리의 생존투쟁이 시작된다. 다양한 성격과 과거를 가진 인물들이 나오지만 그 인물들의 배경이 되어주는 거대한 존재는 울창한 자연이 펼쳐진 섬과 바다다. 드라마 전체를 대표하는 미지의 섬은 높고 커다란 야자수 나무들이 가득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숲 속에서 움직일 때마다 사방으로 흔들린다. 위치도 모르는 외딴섬에 추락하여 문명과 등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건은 겪고 싶지 않..

제주에서는 편한 옷을 입자

야자수가 그려진 옷도 좋아... 제주 여름휴가 준비 때문에 오랜만에 쇼핑을 했다. 온라인 쇼핑몰 무신사에서 할인하는 반팔티와 반바지를 구입했다. 작년까지는 좋은 옷을 구입해 제주에서 입고 다니자는 마인드였지만 지금은 편한 게 최고 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깔끔하고 편한 옷들을 골랐다. 제주바람에 한껏 펄럭일 수 있는 얇은 소재의 옷.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에는 매일매일 무신사에 들어가서 그날 발매된 신제품들을 모두 살펴보곤 했다. 맘에 드는 제품들은 모두 좋아요를 눌러서 보관함에 넣어놨다가 할인되거나 꼭 필요한 시기가 오면 구입을 해서 입었다. 먹는 거에는 큰 욕심이 없었지만 입고 신는 거에는 욕심이 있었다. 그래서 입지 않고 보관만 되어있는 옷들이 집에 많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돈이 많이 아..

제주가 부른다

2020년 첫 제주도 여행의 밤은 정말 기묘했다. 넓은 평지에 우뚝 솟아 오른 오름의 모습은 거인의 무덤 같기도 했다. 숙소로 걸어서 돌아가는 길 유일한 이정표는 불켜진 주택이었다. 나에겐 어둠이 내린 제주의 밤은 처음이었고 친구는 아니었다. 어둠을 눈으로 더듬으며 조금씩 앞으로 헤쳐나갔다. 뒤돌아 우리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그대로 어둠이 밀려와 있었다. 저 멀리 숙소의 마당에 걸어 놓은 전구의 불빛이 보였고 우리는 무사히 밝음에 몸을 노출시켰다. 온몸에 묻어있던 어둠은 살며시 씻겨 내려갔다. 바람이 얕은 숨소리처럼 불었다. 전구의 불빛은 조금씩 흔들렸고 우린 안주 거리를 꺼내어 야외테이블에 맥주와 함께 올려놓았다. 어둠과 한기를 물리칠 원초적인 불도 피웠다. 전구와 불은 우리의 가시거리를 넓혀주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