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4

과거는 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인생은 다시 살 수 없고 누구도 완벽한 과정을 거쳐 지금의 자신이 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생각나는 영화와 드라마의 한 장면이 있다. 아주 가끔씩 그 장면과 대사, 음악이 머릿속에서 울려오고 그때의 감동과 느낌이 일상에서 느껴진다. 그 추억의 한 장면 때문에 지나간 영화와 드라마를 다시 시청한다. 이미 몇 번을 반복적으로 본 이야기들이지만 20대, 30대, 40대 때 느끼는 감정이 다 다르다. 이미 알았다고 생각한 이야기와 의미가 볼 때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넉넉하게 여유시간을 잡고 추억의 영화들을 재감상한다. 다행히 요즘은 OTT 플랫폼에 많은 영화가 올려져 있어서 검색 한번 정도면 어려움 없이 시청이 가능하다. 영화의 한 장면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도무지 잊히지 않거나 정말 뜬금없이..

제주를 수집하자

나는 수집한다. 나는 어떤 이야기에 끌리면 그 작품에 관한 것을 모두 수집하는 집요함이 있다.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가 그런 이야기였다. 영화가 극장에서 막을 내린 지 꽤 시간이 지나서야 관련된 작업물들이 하나씩 공개되었다. 나는 LP,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CD, 각본집, 아가씨 아카입(아가씨 제작과 관련된 의상, 사운드, 촬영, 미술에 관련된 이야기를 엮은 도서), 블루레이 등을 모았고 앞으로도 나올 작업물을 수집할 것이다. 아가씨가 한국영화에서 내 마음을 붙잡았다면 드라마는 '나의 아저씨'였다. 나의 아저씨도 음악과 대본집, 포스터 각종 굿즈와 블루레이 등을 모았다. 그리고 오늘은 같은 작가의 작품 '나의 해방일지'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CD를 받았다. 너무나 행복한 저녁이었다. 이 모든 수집품..

제주는 기회다

나는 내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 몇 달 사이 블로그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잔잔한 추억들을 다시 캐내었고 찾아내었다. 분명 잊고 살았는데 기억은 그대로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찾아주기를 기다렸나 보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들이 예전 기억들을 뒤로 밀어냈으리라. 그래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주었다. 그것이 불행한 기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그 생각들을 떠올리면 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과거를 연대순으로 떠올리면 우리 동네의 어느 지점에 도서 대여점과 비디오 가게가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다. 작은 문방구들과 구멍가게가 어디 있었는지, 아이들이 엄마 몰래 찾아가던 오락실들의 위치도 알고 있다. 마치 비밀지도처럼 내 머릿속엔 그 시절의 가게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표시되어 있다. 그립다. 힘..

제주에서의 기억을 지우자

기억을 지워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제주에서의 과거를. 모두 지워야만 추억하지 않고 지금을 살 수 있다. 난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뒤로 걷기 시작했다. 한 걸음마다 한달이다. 과거를 돌아보며 알게 된 사실은 실제 제주에 있었던 날은 열흘도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날들을 반복적으로 추억한 시간들을 합한 날이 훨씬 길었다. 난 걱정과 후회도 아닌 과거의 기쁨을 만끽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한 것이다. 행복한 추억과 경험이었지만 내가 제주를 향해 나아갈 때마다 힘이드는 날은 과거의 추억을 불러와 대리만족으로 끝내버릴 것이다. 지금의 나에겐 추억은 중요하지 않다. 살아보지 않은 미래 또한 중요하지 않다. 지금 이순간 내가 제주에 있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할 뿐이다. 서울의 탁한 공기가 아니라 바람이 섞여 물처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