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제주가 쌓인다. 어느 날 퇴근길 양재천을 걷다가 내 걸음과 반대로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작은 주문을 건 적이 있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물결, 살랑이는 작은 풀들을 두 눈과 생각 속에 넣고 여기는 제주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계속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걸어가던 양재천 산책로를 진짜 제주로 착각해 버렸다. 실제로는 제주에서 흐르는 하천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제주로 휴가를 갔을 때는 대부분 7월 말이었고 그때쯤엔 이미 장마가 끝나서 건천인 상태였다. 제주의 건천은 항상 거의 말라있어서 밑바닥이 보이고 큰 풀이 자라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양재천을 제주의 하천으로 믿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건 최면이 멀리 떨어진 제주를 뜬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