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에 제주가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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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퇴근길 양재천을 걷다가 내 걸음과 반대로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작은 주문을 건 적이 있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물결, 살랑이는 작은 풀들을 두 눈과 생각 속에 넣고 여기는 제주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계속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걸어가던 양재천 산책로를 진짜 제주로 착각해 버렸다.
실제로는 제주에서 흐르는 하천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제주로 휴가를 갔을 때는 대부분 7월 말이었고 그때쯤엔 이미 장마가 끝나서 건천인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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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건천은 항상 거의 말라있어서 밑바닥이 보이고 큰 풀이 자라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양재천을 제주의 하천으로 믿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건 최면이 멀리 떨어진 제주를 뜬눈으로 보게 했다.
완전히 메말라있던 건천을 물이 꽉 차 넘쳐흐르는 풍경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잠깐 동안의 시공간 초월에 당황했다.
내면 깊은 곳 무의식이 일상으로 올라와 스스로를 홀린 것이다.
나는 무서운 이야기들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중에는 귀신이나 여우에게 홀려 같은 장소를 맴돌거나, 자신이 걷는 길을 전혀 다른 장소로 인식하는 경우들이 있다.
잠깐이지만 내가 경험하고 나니 소름이 돋았다.
제주에 있다고 믿는 미래의 사건을 현재의 시간대로 느끼며 살다 보니 알 수 없는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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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단지 안의 화장실에 들어가면 직사각형의 긴 창가를 바라본다.
그 사각의 프레임 안에는 큰 나무가 하나 있고 바람이 불면 가지가 흔들리며 초록의 나뭇잎들이 빛과 함께 반짝반짝거린다.
그 풍경을 보며 제주의 창가를 보는 것처럼 속으로 암시한다.
아 제주다.
제주바람이 너무 시원하구나.
오늘 제주 날씨 좋네.
이런저런 말들을 하며 계속 감정표현을 한다.
그 순간 나는 작은 행복을 느낀다.
나의 무의식에 점점 제주에 대한 상상과 혼잣말이 쌓여가고 있다.
멀지 않은 미래에 제주에서 살고 있을 나에게, 과거 내가 서울에서 상상했던 모든 이미지와 감정, 감각들이 데자뷔처럼 다가올 날이 올 것이다.
모든 것이 아주 당연한 것처럼 만나야 할 것이 만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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