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7

전설처럼...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2023년 1월 15일. 벌써 한 달의 반이 지났다. 날짜가 지난 것인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 2주 동안 제주를 상상했다. 물리적으로 가 있을 수 없기에 섬을 움직여 머릿속에 심었다. 사람의 두뇌는 뇌수에 떠다니고 있고, 바다 위의 제주와 같다. 나의 머릿속에선 가지 말아야 된다고 외치는 반대세력과 가고자 하는 힘들이 있다. 그 반대세력은 평생을 나와 함께했다. 알 수 없는 환경에서 나를 지키려 붙잡는 힘이다. 알맞게 세팅된 환경값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나에게 보호막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힘들게 살았다. 그들의 보호는 나의 삶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나의 관심과 생각들은 중력처럼 서울에서 제주로 떨어지고 있다.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이 ..

산고양이 똘이 마지막 작별인사

레고 블록처럼 항상 붙박이로 박혀있었던 낡은 종이상자가 사라지니 비로소 쓸쓸함이 다가왔다. 집 뒤의 관악산 수풀에서 매년 산고양이가 울었다. 산에서 태어난 어린 새끼들이 가끔 호기심을 지닌 채 산 밑으로 내려왔고, 매년 한 두 마리가 담을 올라와 문명과 야생의 선을 넘었다. 작은 산고양이는 산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길고양이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항상 그늘 밑 어둠 속으로 숨어 다녔다. 녀석은 그렇게 내가 사는 빌라의 작은 마당으로 스며들었고 이웃 아주머니가 먹이를 주며 보살피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집안에서 키우시던 아주머니는 어린 녀석에게 고양이 사료와 물을 주었다. 옆 건물에서 풀어 키우던 집고양이들은 창문이나 열린 현관문틈 사이로 자주 드나들었고 빌라 마당까지 놀러 와 밥을 먹거나 휴식을 취하며 어..

소설 속 고양이가 동네로 왔다

내 인생에 이것 말고도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고 이뤄진 사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고양이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이야기였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여왕, 기사, 말, 고양이가 어우러진 어두운 이야기였다. 고양이를 친구처럼 아끼며 함께 살아가는 도시가 있었다. 어느 날 여왕의 명령으로 마녀재판을 받듯이 도시 안의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고양이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던 시민들은 여왕의 명령에 행동하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여왕은 고양이 한 마리마다 목숨 값을 내건다. 조용히 있던 시민들은 한 사람이 먼저 고양이에게 해를 입히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광란의 학살에 동참한다. 고양이들은 눈이 뒤집힌 사람들의 칼끝과 손..

낯선 추석 풍경

이렇게만 매일 살면 오래오래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아침 9시쯤에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물 한잔을 마신다. 다른 가족들은 새벽에 일찌감치 낚시를 하러 떠났고 집에는 부모님과 나만 있다. 잔잔한 추석 연휴 첫날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일 년에 딱 3번만 휴식을 갖는다. 새해 1월 1일 그리고 설과 추석 명절 외 여름휴가가 전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정상근무라서 일요일이 거의 유일한 휴식이고 나머지 공휴일이나 빨간 날은 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명절처럼 4일 이상 쉬는 기간은 뭔가 마음도 몸도 낯설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햇빛이 쨍해서 잠깐 집 밖으로 나왔다. 빌라 고양이가 담벼락 위와 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평소에 내가 일..

제주 아침

장기 숙박자와 아침의 감각 보통의 기상보다 조금은 늦게 두 눈에 햇살을 맞이한 시간. 나는 기분 좋은 여유를 느끼며 데크에 마련된 작은 캠핑 탁자에 분다버그 한 병과 제주에서 읽기 위해 준비한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가벼운 바람을 느끼며 캠핑의자에 몸을 맡기고 조용히 눈을 감았다. 조금은 덥고 습한 기운이 가득한 공기 중에 라임향이 올라와 섞이며 바람이 불 때마다 내 코의 감각기관을 두드렸다. 양말도 신지 않은 누드의 발을 가볍게 편채로 몸의 모든 힘을 빼고 지금 이 순간 오감이 느끼는 제주의 모든 감각을 받아들였다. 아 계속 상상해 오던 제주의 아침이었다. 눈을 감고 있어도 햇살이 전해주는 따뜻함이 붉게 느껴졌다. 잠시 숨을 고른 후 시각을 개방했다. 손을 내밀어 분다버그 음료병의 차가운 냉기와 초록..

제주를 끌어당기는 삶

제주를 생각하면 다정해진다. 난 얼마 전까지 힘들면 "힘들어"라고 자동적으로 내뱉었다. 최근에는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면 바로 의식하고 입을 닫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제주를 외친다. 행복과 운을 끌어당기기 위해 부정적인 언어를 쓰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나쁜 일이 생기면 잘되려고 그러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다. 돈을 쓸데가 생기면 난 부자니까 액수에 신경 쓰지 않아 하며 곧 다시 계좌가 채워질 거라 믿는다. 나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언어와 행동에 힘이 실린다. 이미 이루었고 가졌다고 느끼며 행동하니 마음이 바람에 흩날리는 풀처럼 가벼워진다. 이런 마음을 더 젊었을 때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해 보지만, 의미 없는 과거에 시간을 뺏기지 않으려 가능성과 추측의 싹을 잘라버린다. 지금의..

제주로 가는 방법 중 하나

눈에 띄어라. 아침부터 일하는 단지에서 소동이 생겼다. 단지 내에서 돌아다니던 고양이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내려오지 못하고 울고 있었던 것이다. 고양이는 울다가 지쳤는지 소리를 내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밑에만 쳐다봤다. 사람들은 모여서 고양이를 올려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의논했고 쉽사리 결론은 나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나무 위를 쳐다보자 지나가던 사람들도 점점 걷다가 멈춰서 같은 곳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주인이 사다리차를 불렀는지 커다란 사다리차가 나무 밑에 주차하고 기사분이 올라탄 채 사다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고양이 곁으로 가까이 다가갔을 때 낯선 이라 겁먹었는지 다른 가지 위로 달아났다. 사람들은 안돼 하며 가슴을 졸였고 기사분도 당황했다. 그 사이에 더 많은 사람들이 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