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전설처럼...

낮가림 2023. 1. 15.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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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2023년 1월 15일.
벌써 한 달의 반이 지났다.
날짜가 지난 것인지, 시간이 흐른 것인지 잘 모른다.
다만 그 2주 동안 제주를 상상했다.
물리적으로 가 있을 수 없기에 섬을 움직여 머릿속에 심었다.
사람의 두뇌는 뇌수에 떠다니고 있고, 바다 위의 제주와 같다.
나의 머릿속에선 가지 말아야 된다고 외치는 반대세력과 가고자 하는 힘들이 있다.
그 반대세력은 평생을 나와 함께했다.
알 수 없는 환경에서 나를 지키려 붙잡는 힘이다.
알맞게 세팅된 환경값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나에게 보호막을 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힘들게 살았다.
그들의 보호는 나의 삶을 안정시키지 못했다.

나의 관심과 생각들은 중력처럼 서울에서 제주로 떨어지고 있다.
화선지 위에  떨어진 먹물이 작은 점에서 점점 번져 커지듯이 나의 제주는 커져만 간다.
지금은 완전히 알 수 없는 제주에서의 삶이 그립고 궁금하다.
판타지 영화 속의 성스러운 뿔이 달린 유니콘처럼 제주에서 살고 있는 상상 속의 나는 전설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래된 이야기 속의 첫 장처럼 말이다.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하는 첫 문장처럼 제주에서 살고 있는 한 노인이 입을 연다.




"아주 먼 옛날 육지에서 섬으로 넘어오려는 한 사내가 있었지. 그 사내는 큰 새를 타고 바다를 건너왔어."
노인의 눈은 잠시 붉어진다.
급작스런 제주의 날씨처럼 노인의 눈에 작은 빗물이 고인다.
눈동자에 몰려있던 감정이 콧등을 타고 콧망울에 맺힌다.
훌쩍거리며 손등으로 코를 훔친 노인은 다시 입을 연다.
"사내는 꿈을 가지고 제주에 왔지만 순탄치는 않았어. 세상의 순리가 그렇듯이 이방인이 정착하기엔 시간이 걸렸지."
노인은 무 썰듯이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갑자기 결과를 말했다.
"사내는 제주에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네. 이루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루고 주고자 하는 것을 모두 나누었다네."

노인의 말을 듣던 나는 궁금함에 물어보았다.
"어떻게 행복하게 살았나요? 결과 말고 자세하게 말씀해 주실 수 없나요?"
질문을 받은 노인은 나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젊은이여 항상 첫 장과 마지막 장만 읽게나. 결과가 정해졌으니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는 끝과 연결될 걸세. 지금은 아직 읽을 수 없지. 쓰이지 않았으니. 사람은 고양이의 생각을 알 수 없고, 고양이는 자기 꼬리의 행동을 알 수 없지. 하지만 결국 고양이와 꼬리는 한 몸이라네."
나는 순간 노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자기 고양이라뇨?"
노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아직은 알 수 없어. 사내에게 무슨 일들이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운과 인연들이 바람처럼 불어오겠지.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어떤 꿈을 이루어 갈지. 어떤 사랑을 하게 될지. 아직은 일어나지 않았다네."




"하지만 어르신은 모두 아는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상상 속의 노인은 이제 자리를 떠야 하는 듯이 말에 힘을 실었다.
"내가 누구라 생각하는가? 자네가 상상한 아주 먼 훗날 제주에서 살다죽을 노인의 모습이지. 만약에 아주 만약에..
. 제주를 떠나지 않는다면 말이야. 누구든 자신이 늙은 모습을 상상할 수 없어. 만약 그렇다 해도 일시적인 착각이지. 나를 자세히 보게. 바로 자네일세."
나는 알고 있었다. 노인의 모습은 내가 상상한 모습이라는 것을.
노인은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가 아는 만큼 딱 그만큼만 알고 있다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읽을 수 없지.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결정에 따라 많은 것들이 바뀔 테니까. 걱정하지 말게나. 생각만큼 힘든 일은 일어나지 않아. 자네는 이미 끝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을 가졌지 않나."




나는 노인의 상상을 멈추었다.
미래의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모를 뿐 분명 미래의 나는 알고 있다.
고양이가 사람의 발목에 얼굴을 비벼 채취를 남기듯이 알고 있다는 기분을 내 생각에 비벼대고 있다.
어쩌면 몇 년 혹은 며칠 후에 나는 진짜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내가 제주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그리고 누구를 찾아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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