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천 2

양재천 달리기

그냥 뛰었을 뿐이다. 약 10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계속 야근 중이다. 생각보다 많이 바빴고 체력적으로 지쳤다. 저녁 7시쯤 퇴근을 하며 길을 걸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이 시간에 타는 버스는 사람으로 꽉 차있다. 퇴근길 속도를 위해 굳이 비좁은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양재천 육교 밑으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 서른 살 초반까지는 늦은 밤에 밖으로 나와 뛰어다녔다.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었고 그 덕분에 뛰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늦은 저녁까지 야근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나의 달리기 취미는 사라져 버렸다. 달린다는 감각은 출근길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순간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퇴근길 어두운 양재천 길 위에..

제주 건천

무의식에 제주가 쌓인다. 어느 날 퇴근길 양재천을 걷다가 내 걸음과 반대로 흘러가는 물결을 보며 작은 주문을 건 적이 있다. 눈부신 햇빛, 반짝이는 물결, 살랑이는 작은 풀들을 두 눈과 생각 속에 넣고 여기는 제주다라고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계속 중얼거리며 길을 걸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걸어가던 양재천 산책로를 진짜 제주로 착각해 버렸다. 실제로는 제주에서 흐르는 하천을 본 적이 없었다. 내가 제주로 휴가를 갔을 때는 대부분 7월 말이었고 그때쯤엔 이미 장마가 끝나서 건천인 상태였다. 제주의 건천은 항상 거의 말라있어서 밑바닥이 보이고 큰 풀이 자라나 있다. 그럼에도 나는 양재천을 제주의 하천으로 믿고 걸어가고 있었다. 몇 초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 스스로 건 최면이 멀리 떨어진 제주를 뜬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