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양재천 달리기

낮가림 2023. 1. 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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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뛰었을 뿐이다.






약 10일 정도 되는 기간 동안 계속 야근 중이다.
생각보다 많이 바빴고 체력적으로 지쳤다.
저녁 7시쯤 퇴근을 하며 길을 걸었다.
날은 벌써 어두워졌다.
이 시간에 타는 버스는 사람으로 꽉 차있다.
퇴근길 속도를 위해 굳이 비좁은 버스를 타고 싶지 않았다.
조용히 양재천 육교 밑으로 들어가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 보니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

서른 살 초반까지는 늦은 밤에 밖으로 나와 뛰어다녔다.
유일하게 하는 운동이었고 그 덕분에 뛰는 것만큼은 자신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늦은 저녁까지 야근을 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나의 달리기 취미는 사라져 버렸다.
달린다는 감각은 출근길 전철을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순간만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퇴근길 어두운 양재천 길 위에서 갑자기 뛰고 싶어졌다.
가방을 옆으로 메고 있었지만 가볍게 한 걸음씩 천천히 속도를 내었다.

입을 막고 있던 마스크를 내려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뱉으며 앞으로 전진했다.
출근길 달리기가 시간을 맞춰야 한다는 간절함이라면 퇴근길 달리기는 기분 좋은 뜀박질 그 자체였다.
아무 생각 없이 찬 바람을 맞으며 뛸 수 있었다.
뛰고 걷고 다시 뛰었다.
10년 전 어두운 밤길을 뛰어다니던 그때의 감정들이 되살아났다.
그때도 왜 뛰어야 하는지 정확한 목표나 이유는 없었다.
그냥 뛰었을 뿐이다.
가장 추운 날에도 집에서 뛰쳐나와 달렸다.
맞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뛰고 나서 턱이 돌아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제주에서는 뛰어본 기억이 없다.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 하나하나가 소중해서 천천히 걸으며 눈에 담아야 했다.
이제는 작은 소망 중에 하나가 제주의 어느 새벽에 길 위로 나와 뛰는 것이다.
혼자여도 좋고 누군가와 함께라도 좋다.
정한 곳 없이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따라 달리고 싶을 뿐이다.

오랜만에 자유로운 달리기를 하니 가슴이 벅차오른 기분이었다.
앞으로 자주 달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