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과천 서울대공원 그리고 식물

낮가림 2022. 9. 3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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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도 좋고 식물도 좋다.






글을 쓰려고 생각을 하다 보니 내가 몸담았던 곳들이 굉장히 깊은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20대 초반에 나는 공익근무요원으로 과천 서울대공원에서 근무를 하게 됐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안전사고 예방과 관람객과 동물의 접촉을 막는 일들이었다.
초식동물이라고 해도 우리 안에 가둬진 동물의 본능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근무하던 기간에도 많은 사고들이 있었다.
당시 뉴스에도 보도된 사건이 있었는데 이일로 인간의 잔혹함을 깨달았었다.
자폐아 자녀와 함께 동물원에 놀러 온 부모가 코끼리 우리 안에 자식을 던져버린 것이다.
이 당시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아이는 크게 다치지 않았고 부모는 뜻하지 않은 사고였다고 했다.
그 후 조사 결과는 부모가 자폐아 자녀를 통해 보험금을 노린 조작극이었다고 들었다.

이 사건 외에도 호랑이 우리 울타리를 넘어가던 사람들을 막아야 했고 청계산에서 생을 마감한 분들의 시체를 찾아다녀야 했다.
청계산에 큰 산불이 나서 불을 끄기 위해 등에 물통을 매고 올라가 작은 호스로 불씨를 죽여야 했다.
화재원인은 등산객이 버린 담배꽁초로 기억한다.
위험천만한 일들도 많았지만 소중한 순간들도 많았다.
규모 자체가 워낙 큰 동물원이라서 살면서 두 눈으로 목격하기 힘든 수많은 동물들을 볼 수가 있다.
직접 만질 수는 없지만 두 눈을 응시하며 마주 보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시간이었다.
허나 야생성을 죽인 채 좁은 우리 안에 갇혀 사는 동물의 모습들이 슬퍼 보이는 것은 확실하다.
개중에는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을 그 공간 안에서만 살다 죽어야 하는 개체들도 있다.




대공원 안에는 꽤나 큰 유리온실이 있다.
그 안에는 천장까지 키가 닿는 큰 야자나무와 여러 식물들이 공존한다.
근무를 서면서 가끔 온실 안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 적이 있다.
높이 자란 기괴한 식물을 보며 다른 세계에 온듯한 이국적 기분이 들었다.
온실 안은 겨울에도 항상 따뜻했다.
그렇게 나는 서울대공원에서 몇 번의 겨울을 보내고 사회로 나왔다.
20년 후 나는 과천화훼단지에서 식물을 심는 일을 하고 있다.
동물에서 식물로 교감하는 대상이 바뀌었을 뿐 자연과 접촉하는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문득 생각해보니 과천이라는 지역을 비롯해서 동물과 식물이라는 교차점이 너무 많았음을 깨닫고 신기했다.
인생의 작은 점들이 이렇게 이어져서 선이 되나 보다.




이제 제주를 향해 내 마음과 지혜를 쏟고 있다.
여전히 자연적인 삶을 그리는 마음은 동일하다.
20년 전 느꼈던 대공원 온실의 기분 좋은 설렘이 무의식에 남아있었나 보다.
제주도 곶자왈을 지키는 일에 작게나마 도움을 주고 싶고, 식물에 관한 일도 계속 이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동물도 좋고 식물도 좋다.
자연을 사랑해서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는 제주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작은 점들이 이어져서 선이 되고 면이 된다.
나에게 그 면은 제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