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소설 속 고양이가 동네로 왔다

낮가림 2022. 10. 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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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에 이것 말고도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고 이뤄진 사건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나는 고양이에 관한 소설을 쓴 적이 있었다.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한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이야기였다.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여왕, 기사, 말, 고양이가 어우러진 어두운 이야기였다.
고양이를 친구처럼 아끼며 함께 살아가는 도시가 있었다.
어느 날 여왕의 명령으로 마녀재판을 받듯이 도시 안의 모든 고양이를 학살하라는 명이 떨어진다.
고양이와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었던 시민들은 여왕의 명령에 행동하기를 주저한다.
그러자 여왕은 고양이 한 마리마다 목숨 값을 내건다.
조용히 있던 시민들은 한 사람이 먼저 고양이에게 해를 입히자 너도나도 할 것 없이 광란의 학살에 동참한다.

고양이들은 눈이 뒤집힌 사람들의 칼끝과 손끝을 피해 도망을 다닌다.
방금까지도 몸을 비비며 채취를 남겼던 존재들이 아니었다.
담벼락 위로 혹은 쥐구멍을 찾아 고양이들은 내달렸다.
성 밖으로 탈출해 숲으로 들어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양이 무리들의 여왕 격인 존재와 그 호위 고양이들이 한데 뭉쳐서 숲으로 들어가고, 그 뒤를 커다란 말을 타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기사들이 뒤쫐는다.
기사들의 추격을 피해 고양이들은 무언가를 통과하여 현재의 시대로 타임워프를 하게 된다.
이야기는 여기서 한 여자와 얽히면서 다시 시작되는데...
여기까지의 내용은 짧지만 굉장히 단어 하나를 의미 있게 쓰려고 노력했었던 기억이 있다.
허나 너무 디테일하게 쓰느라 이야기를 초반에 중단하고 말았다.




이 때는 오피스텔에 혼자 자취하며 살던 때였다.
낮에는 극장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작은 책상 위에서 노트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이때의 기억이 지금 생각해도 꽤나 낭만적이고 한창 몰입에 빠지던 순간이었다.
시간이 흘러 이야기는 노트북 속 한글파일로만 존재하다가 사라졌다.
웃기는 건 나는 그때 고양이를 한 번도 길러보거나 친하게 지낸 적이 없었다.
단지 고양이가 너무 이뻐서 혼자 공상에 빠져버린 것이다.
이야기 속엔 다섯 마리 이상의 고양이들이 등장하지만 그 당시 나의 환경엔 고양이 한 마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의 머릿속 낡은 서랍 어느 곳에 프린트된 채로 숨겨진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썼다는 것도 지금 생각을 끄집어 내서야 알게 됐다.




이야기 속에서 난 수많은 고양이를 보았고 또다시 10년 정도가 흐른 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나는 고양이를 기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고양이들이 무리를 지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퇴근 후 집으로 들어가는 나를 둘러싸고 한 고양이가 얼굴을 발목에 비볐다.
이게 무슨 일이지 놀라면서도 고양이가 내게 보인 친절에 가슴이 따뜻해졌다.
그 후로 고양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골목에서 돌아다녔고 어느 날부터는 우리 집에 그냥 들어와 방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집의 바로 아래층과 옆의 집에 이사 오신 분들이 모두 고양이를 기르시는 분들이셨다.
특이하게도 두집다 고양이를 풀어놓고 키우셨다.
창문으로 계단으로 열린 문틈 사이로 고양이들은 자유롭게 출입하며 온 동네를 정복하였다.




고양이의 숫자는 거의 10마리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 옆집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셨지만 고양이 한 마리는 남아 우리 집 빌라 앞에서 먹고자며 살고 있다.
이때가 고양이들과 가장 큰 교감을 나누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 시절에는 몰랐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상상이 현실로 이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와 함께 살지 않던 사람이 고양이에 관한 소설을 쓰고, 매일매일 처음부터 쓴 부분까지 머릿속에서 영상으로 만들어 상영했다.
이 당시에는 심상화나 끌어당김의 법칙 등을 전혀 몰랐고 들어 본 적 없는 용어였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집에서 고양이 한 마리 키우지 않음에도 매일 고양이들을 만져주고 안마를 해주며 산다.
이런 식으로 상상이 이뤄질 줄은 몰랐다.




내 인생에 이것 말고도 같은 방식으로 상상하고 이뤄진 사건들이 많을 것이다.
그 순간에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지나고 보면 내가 상상한 것과 거의 같은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제주에 관한 이야기야 소재를 찾아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있다.
여기에 내가 적은 이야기가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천천히 현실이 되어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빨리 이루고 싶다.
그래야만 한다.
어서 제주에 가서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고양이들아 사랑한다.
별이야 잘 살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