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영사계의 밤은 조용히 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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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리니 해가 뜨겁다.
친구는 은빛 캐리어를 나는 무거운 배낭을 등에 매고 아스팔트 도로 위에 우두커니 서있다.
네이버 지도 앱을 실행해보니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차들이 지나가는 애매한 길이라 조심히 길가 끝에 붙어 이동하기 시작했다.
공항에서 버스를 잘못 타서 한참만에 서귀포에 도착한 후라 머리가 조금 띵하다.
일단은 무조건 걸어야 했다.
고개를 들어 위를 보니 작은 야자수들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제주에 와서 서귀포는 처음이다.
그동안 가봤던 제주와는 다른 풍경과 땅 내음을 상상하며 한 발자국씩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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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나뭇가지들이 바람결에 마찰하며 듣기 좋은 시원한 소리를 들려준다.
제주의 전통 대문처럼 기다란 통나무가 얹혀있는 정문 앞에 차 한 대가 서있었고 중년의 남녀 두 분이 청소와 정리를 하고 계셨다.
가까이 다가간 우리를 보고 살짝 놀라셨고 이곳이 월영사계인지 여쭈었다.
두 분은 이곳이 월영사계가 맞다고 하셨고 예약을 하셨냐고 물으셨다.
알고 보니 두 분이 월영사계의 사장님 부부셨다.
우리는 정문의 통나무를 넘어 크고 작은 나무가 가득한 마당으로 향했다.
우리가 안내받은 숙소는 검은 화강암에 둘러싸이고 전면이 통유리로 마감된 집이었다.
작은 데크가 있었으며 캠핑용 의자와 간이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몇 발자국 건너에는 인디언 감성이 느껴지는 작은 천막 텐트가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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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니 한쪽은 귤나무로 가득했고 청귤이 해를 받아 반짝반짝거리며 달려있었다.
몹시 지쳐있었던 우리는 잠깐의 감상을 마치고 사장님의 안내를 받아 숙소로 들어갔다.
하얗고 여유가 넘치며 우드로 마감된 감성 숙소의 느낌이 전해졌다.
창으로는 빛이 쏟아졌고 저 멀리 산방산이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었다.
천장은 외롭지 않다는 듯이 다양한 조명으로 장식되 있었다.
짐을 내려놓고 미리 준비된 삼다수 무라벨 한 병을 따서 시원하게 한 모금을 했다.
살 것 같았다.
천천히 눈길을 돌렸다.
단아하고 깔끔했다.
드립 커피세트의 소품도 좋았고 벽 쪽에 놓인 마샬 블루투스 스피커도 예뻤다.
내가 며칠을 클릭하며 찾던 이상적인 숙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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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사장님이 조식으로 구성된 오리지널 베이글과 필라델피아 치즈, 다보 잼, 분다버그 음료 두병을 가져오셨다.
그리고 와인 한 병까지 내어주셨다.
사실 다음 날 아침 조식으로 미리 주신 거였지만 배가 고팠던 우리는 요기하라고 주신 줄 알고 당일에 바로 먹어버렸다.
사장님이 상주하고 계신 카페테리아에 들어가서 사정을 말하자 친절히 다시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고 하셨다.
사실 베이글에 치즈와 쨈을 발라먹는 식사는 처음이었는데 나름 특이한 경험이었고 베이글과 치즈의 조합이 꽤나 맛있었다.
월영사계는 4채의 숙소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채마다 독립된 마당과 인디언 천막이 있었다.
뒤편으로는 모두 귤밭 정원이었고 호박 덩굴줄기가 커다란 나무를 감아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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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지고 밤이 뜨자 독채 숙소 주변으로는 바람소리와 풀벌레 소리만 들렸다.
우리는 나가서 마당을 지나 통나무를 넘어 정문 앞의 넓은 공터에 섰다.
고개를 들고 시야가 익숙해지자 밤하늘에 모래를 흩뿌린 듯이 반짝반짝하는 별이 보였다.
지나다니는 차만 몇 대 있을 뿐 주변에 인가는 없고 모두 펜션 여행객뿐이라 돌담처럼 조용했다.
정면에는 시야가 뻥 뚫린 넓은 풀밭만 살살거렸고 저 멀리 불빛이 들어온 건물 몇 채만 보였다.
월영사계의 밤은 조용히 빛이 났다.
몇 번의 짧은 숨으로 공기를 덥히고 다시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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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안에 설치된 LG 빔프로젝트를 틀어서 넷플릭스 영상을 틀었다.
몸도 피곤하고 정신도 살짝 오락가락했지만 늦은 밤까지 제주낭만을 즐기고 싶었다.
슬슬 눈이 감기자 눈앞의 영상이 빔인지 내 꿈이 투사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소파 위에 작게 몸을 웅크린 채 눈을 감았다.
월영사계의 첫날이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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