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나는 마음과 함께 제주에 간다

낮가림 2022. 3. 19.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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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흔들린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 던져놓은 것처럼 흔들린다.

내가 쓸쓸할 때 마음은 내 곁에 있지 않았다.
손발이 차갑도록 시린날들을 마음없이 혼자 견뎌내야 했다.
내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은 마음이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한몸에서 살면서 왜 우린 서로를 미워하고 무관심 한걸까.
손잡으려 다가가면 저 멀리 풀숲으로 숨어버렸다.
마음과 나는 언제나 함께였던 적이 없었다.

알고 있다.
나의 마음은 여자아이다.
예전부터 쭉 이 아이는 자라왔고 지금은 소녀가 되었다.
하지만 나완 어울리지 않겠다는 듯이 나를 피해 다녔다.
똑같은 인생.
매번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이 불러온 기대치 없는 같은 결과.
삶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불성실한 삶.
누군가의 밥상위에 수저만 올려놓은 삶.
나도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들이 나 스스로에게 얼마나 가혹하며 슬픈 일인지.

난 마음을 몰래 지켜봤다.
그 아이는 잔잔한 햇살 아래서 그림을 그렸다.
숲의 그늘에 앉아 글을 써서 이야기들을 만들었다.
예쁜 것들을 찾아내 스스로를 꾸미고 안식처에 장식을 했다.
마음은 참 많은 재능을 가진 아이였다.
내가 돌보지 않았음에도 혼자서 저렇게 성장하다니.
나는 점점 늙어갔음에도 마음은 10대의 여자아이처럼 밝고 어렸다.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았는지 마음은 다시 저 멀리로 도망갔다.
왜 자꾸 나를 피하는 것일까.
난 너의 위로가 필요한데.
내 마음에게도 외면받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기억한다.
꿈속에서 세상서럽게 펑펑 울던 나를.
한두번이 아니라 꽤나 많이 자주 운 기억이 있다.
어떤 감정이 눈물샘을 자극했는지 모르지만 난 소중한 누군가를 잃은 것처럼 울어야했다.
꿈에서 깨고 나면 울었던 기억과 감정은 그대로 남았고 그날 하루는 그 감정에 나를 맡겼다.
살면서 현실에서 울었던 기억이 10대 이후로는 전혀없다.
나의 댐엔 수많은 감정의 눈물이 가득차 있었을 테고 배출을 할 수 없는 무감정의 삶이 계속 되자 꿈속에서 터뜨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난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울지않았다.
슬픈영화를 보거나 이야기를 봤을 때 잠깐 맺힌 유리창가에 묻어난 이슬같은 눈물이 다였다.
물론 그 조차도 소중한 체험이지만 너무 오래 쌓여온 감정의 메마름을 적시기엔 많이 부족했다.
난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어떤 어른이 된 것일까.

내가 마음과 멀어진 때가 언제부터 였을까?
나는 아이였을 때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조금 더 자라서 그 그림에 이야기를 더했다.
난 만화가가 되고 싶었다.
그때 마음은 나와 함께 있었다.
난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고 눈을 감지 않은 채로 현실에 거대한 들판을 만들어내어 마음과 함께 뛰어다녔다.
그 아이는 웃고 있었다.
너무나 행복한 미소를 가진 예쁜 아이였다.
내가 실수하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면 먼저 다가와서 그냥 지켜봐주었다.
그럼 난 그 아이를 위해 다시 힘을 내었다.
나는 마음을 그 아이도 나를 서로 지켜주었다.

10대가 폭풍처럼 지나갔다.
이제 내 인생에 잔잔한 날만 있으리라 기대하며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단 한 걸음에 나의 기대는 진흙탕 밑으로 빠져들었다.
난 살기위해 무엇이라도 잡아야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내가 원한 삶이 아닌 살아지는 대로 살아지는 삶이 시작 된것이다.
춥고 배고팠다.
어떤 때는 정말 밥을 먹기 위해 일하러 나간 날도 있었다.
자연스레 내 손에는 딱딱한 쇠뭉치와 연장이 들려있었다.
나의 손은 굳은 살로 거칠어졌고 몰려오는 피로감에 눈뜬 채 상상하는 일은 점점 사라져갔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도 사라졌고 더 이상 이야기도 만들어내지 않았다.
나는 지친 어른이 되었다.
감정은 메말라갔고 내 상상의 낙원을 돌보아줄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마음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정도 안정된 생활이 되어 나는 낙원으로 다시 찾아갔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너무 오래 잊고 산것일까.
나한테 화난 것일까.
난 계속 시간을 내어 들판을 돌아다녔고 작은 숲에서 그 아이를 찾아내었다.
나는 반가워 했지만 그 아이는 나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나는 서운했다.
그냥 멀리서 지켜볼 뿐이었다.
아이는 지치는 않는 듯이 뛰거나 뒹굴었고 그러기를 계속하다 풀숲에서 잠이 들었다.
바람이 지나가며 아이의 땀을 말려주었다.
난 아이가 깨지않게 아이가 있던 숲으로 갔다.
숲의 커다란 고사리 잎사귀 밑으로 많은 노트들이 쌓여져 있었다.
난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노트 한권을 들어 펼쳤다.
지금껏 아이가 그려온 수많은 그림과 상상의 세계가 빼곡히 적혀있었다.
그렇다.
난 몇장만 보고서 알았다.
이 기록들은 내가 만들다 중단해버린 세계에 대한 이야기와 그림들이었다.
내가 어린시절 마음과 함께 만들었던 설정과 인물들.
내가 현실에 빠져 잊고 살 때 아이는 혼자서 계속 만들어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었다.
언젠가 내가 다시 돌아오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진짜로 준비가 됐는지 믿지 못했고 나 역시 그런 의도로 찾은 것이 아니었다.
미안했다.
잊고 살았었다.
내가 멀어질수록 아이는 손을 내밀었지만 난 내 마음과 놀아줄 여유가 없었다.
난 점점 꿈과 멀어지는 삶을 살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일 잘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나는 내면을 돌보지 않았고 나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아이가 몰래 지켜봤다.
자신의 그림과 이야기를 몰래 훔쳐보던 나를.
이야기중엔 내가 꿈에서 겪었던 많은 일들이 적혀있었다.
대부분 잊고 살았지만 그림과 글로 보니 다시 생각이 났다.
내가 잠들었을 때 아이는 나의 환상을 모두 그림과 글로 남겨놨다.
언제든지 내가 다시 꺼내쓸 수 있도록.
아이는 나를 위한 꿈의 대본을 썼다.
현실에 지친 내가 꿈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게.
내가 감정을 배출 할 장소와 이야기를 만들었고 난 펑펑 울 수 있었다.
그제서야 왜 내가 그리도 울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난 뒤돌아봤고 아이는 나를 멍하니 지켜보다 사라졌다.

아이와 나의 거리가 다시 좁혀졌다.
내가 제주라는 꿈을 꾸자 아이는 현실과 상상의 장소가 겹치는 것을 느꼈다.
다시 내가 하는 생각과 행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도 마음과 가까워 지기 위해 다시 그림을 그리려하고 글을 쓴다.
삭막한 어른에서 내 마음의 보호자이자 친구가 되기 위해 다시 꿈을 꾼다.
괴물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난 아이에게 다시는 그런 삶을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흔들린다.
일렁이는 물결 위에 던져놓은 것처럼 흔들린다.
다시 나를 향해 흔들린다.
우리 제주에 가면 예전처럼 마음껏 뛰어다니자.
내가 잠들었을 때 지켜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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