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나는 제주의 흙에 뿌리를 내린다

낮가림 2022. 4. 7.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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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심기 위해선 항상 흙을 만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여러 종류의 흙을 만지고 보게 된다.
완전히 뻘처럼 숨구멍이 없는 진흙 같은 흙이 있고, 크고 작은 모래 알갱이들이 섞여 물 빠짐이 좋아 공기 순환이 좋은 흙들이 있다.
진흙 같은 흙에 심긴 식물은 물을 주어도 물이 빠져나갈 물길이 없어서 뿌리가 숨도 쉬지 못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썩고 만다.
흙이 물을 그대로 머금어서 밑으로 내려보내지를 않으니 식물의 뿌리는 익사당하듯이 숨도 못 쉬고 죽어간다.

예전의 내 인생이 그랬다.
내 주변 환경과 집의 분위기, 돈을 버는 직장의 스트레스가 내게 숨을 쉴 여유를 주지 않았고 내 마음과 꿈은 썩어갔다.
퇴근길 지친 다리는 무거웠고 걱정과 불만들을 흘려보낼 곳이 없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난 한 숨을 쉬는 버릇이 생겼고 사람들은 왜 한숨을 쉬냐고 물었다.
그 한 숨은 살기 위한 숨이었다.
그렇게 크게 속으로 들이마시고 내뱉지 않으면 숨을 쉰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려면 크게 한 숨을 내 쉬어야만 했다.
다행히 살다 보니 내 환경에 숨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주어졌고 내 꿈의 뿌리들은 지금도 새순을 피우려 에너지를 끌어올리고 있다.

아주 어린 시절 놀이터나 학교 운동장에서 흙을 만졌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때 모래들은 바닷가 해안에서 퍼온 모래였는지 흙속엔 작은 조개껍질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은 보물 찾기를 하듯이 흙속을 뒤져 이쁘고 특이한 조개껍질들을 찾아내었다.
어린 시절 흙을 만졌던 촉감과 그때의 작은 추억들이 좋은 감정으로 남아있었다.
성인이 되어 만지게 된 흙의 감촉은 정말로 특이했다.
부드러운 코코아 가루의 느낌이랄까?
흙이 주는 편안함과 안정감은 단순히 좋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이 흙으로 생명을 지탱하고 살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제주에서 본 밭의 흙은 완전히 검었고, 숲길에서 본 길의 흙은 화산송이로 이루어진 붉은 흙이었다.
검은 대지의 흙에서 형광색이 감도는 푸릇푸릇한 농작물이 올라오자 강렬한 대비를 이루었다.
잠깐 눈길을 뺏긴 채로 멍하니 쳐다본 기억이 있다.
만약에 내가 제주에 가서도 지금 하는 일을 본업이 아닌 부업으로 하게 된다면 제주의 검은흙과 붉은 흙으로 화분에 식물을 심어보고 싶다.
생각만 해도 기대된다.

난 좋은 흙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는 아니었지만 살기 위해 환경을 조금씩 좋은 흙으로 채워나갔다.
부모님은 나에게 물을 주셨고 스스로 자랄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아 주셨다.
거친 바람과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강해졌고 매서운 겨울을 지나 조금씩 스스로의 존재 이유를 찾아나갔다.
그리고 찾은 것 같다.
이제 난 머지않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과실의 맛을 본 사람들은 나를 찾게 될 것이다.
나는 달고 단 사람이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향기를 그대들의 코앞 공기 중에 띄우고 난 지켜볼 것이다.
세상이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나는 던졌으니 반드시 물결은 일어난다.

그동안 수고했어.
나의 뿌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