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는 기회다

낮가림 2022. 4. 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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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이야기를 좋아한다.
최근 몇 달 사이 블로그를 하면서 잊고 있었던 나의 잔잔한 추억들을 다시 캐내었고 찾아내었다.
분명 잊고 살았는데 기억은 그대로 어딘가 구석에 처박혀 찾아주기를 기다렸나 보다.
아마도 살아가면서 많은 기억들이 예전 기억들을 뒤로 밀어냈으리라.
그래도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아 주었다.
그것이 불행한 기억이든 좋은 추억이든 그 생각들을 떠올리면 난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과거를 연대순으로 떠올리면 우리 동네의 어느 지점에 도서 대여점과 비디오 가게가 있었는지 말해 줄 수 있다.
작은 문방구들과 구멍가게가 어디 있었는지, 아이들이 엄마 몰래 찾아가던 오락실들의 위치도 알고 있다.
마치 비밀지도처럼 내 머릿속엔 그 시절의 가게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표시되어 있다.




그립다.
힘들고 외로운 소년기였지만 그 시절의 추억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 내성적이고 그림자 같았던 작은 아이가 지금의 나이니까.
그 소년은 커서 지친 인생의 어느 날, 각성하여 제주를 목표로 삼는다.
삶이란 그렇다.
아무 기척 없이 갑자기 찾아오고 지금이 기회야라고 부추긴다.
다행히 난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삶에서 기회는 바로 지금이야라고 말해주지 않는다.
졸다가 지나친 역처럼 아무 느낌 없이 지나쳐 버린다.
꽤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바로 그때가 내 삶의 기회였음을 깨닫고 후회한다.
슬픈 감정으로도 그 시간과 공간 그때의 감정을 되돌릴 수 없다.
기회는 한 번만 오는 것이 아니지만 일찍 알아차릴수록 남은 삶을 원하는 방식으로 살 수 있다.

지나가버린 소년기와 20대의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내 젊은 날에 꽤나 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난 아직 준비가 안됐어라는 어리석은 이유로 기회가 내민 손을 잡지 않았다.
그때 그 기회를 잡았다면 지금의 난 어떻게 됐을까?
블로그 글을 쓰고 있을까?
지금은 알 수 없는 기회의 연으로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나 연인을 만났을 테고 아마도 지금의 친구들과 지인들과는 전혀 모르는 사이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제주를 몰랐을 것이다.
물론 삶에 만약에는 없다.
단 하나의 길만 걸어가고 다른 나의 삶은 멀티버스에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내 소중한 인연들과 내 일들에 대해 감사하고 있다.
수많은 기회가 오고 그 기회를 알아차린 시기도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
눈치 없는 나를 원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과는 정말 많이 다른 아주 오래 전의 동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동네도 변했고 나도 변했다.
내가 제주로 떠난 뒤에도 동네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계속 변화할 것이다.
많은 시간이 지나 동네에 다시 오게 되면 아주 많은 것들이 바뀌어 있을 수 있다.
그래도 난 알고 있다.
어느 곳에 미용실이 있었고 편의점이 있었으며 은행이 있었는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제주의 어느 곳에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