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방문 앞의 제주지도

낮가림 2022. 4. 5.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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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새벽 알람 소리에 맞춰 몸을 일으키는 것이 너무 힘들다.
10초가 안 되는 짧은 시간에 조금 더 누워보겠다고 잠깐 눈을 감았다가 뜨고 몸을 일으킨다.
그리고 오늘은 푹 자기에 좋은 날이라고 아쉬워한다.
내가 누워있던 자리를 보며 출근하기 싫다고 나를 설득한다.
그러나 내 두발은 이미 씻기 위해 화장실 문턱을 넘어섰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부지런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난 누구보다 게으르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으며 타인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내가 제주도에 가려하다니...
가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서울을 벗어나서 제주로 가려한다.
게으른 나를 타인의 눈에 길들인 것처럼 부지런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만 내 삶과 목적을 위해서다.

장소를 바꿔본다.
나는 제주에 있고 알람 소리에 깬다.
사실 예전에 여행 갔던 내 기억에 의하면 새벽에 무시무시한 바람소리가 들리고 그 진동이 느껴져서 깬 기억이 있다.
어쨌든 나는 출근하지 않아도 되며 제주에서는 나를 위해 일하고 있다.
조금만 더 잘까 하면서 누운 자리에서 베개를 꼭 끌어안고 30분 정도를 더 잔다.
너무 행복하다.
잠시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 햇빛과 바람으로 구겨진 얼굴을 씻고 편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행복하다.


환경과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가 정말 큰 차이를 만든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집은 중학생 때 이사 온 집이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이 집에서 살았는데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아버지가 방문에 붙여 놓으신 빛바랜 우리나라 지도가 보인다.
그때는 몰랐었다.
제주도의 존재를.
지금은 알게 됐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방문 앞에서 나를 쳐다봤던 제주를.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던 것이다.


우연일지 모르지만 그 지도 위에는 아이유 포스터가 붙어있다.
아버지가 붙여 놓으신 우중충한 지도가 맘에 안 들어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아이유 포스터를 붙여놨다.
내가 두 번째 제주여행의 테마로 잡은 것이 아이유가 다녀간 제주의 숲이었다.
그래서 다녀온 곳이 삼다수 숲과 청수곶자왈이었다.
나는 방문의 두 포스터에 전혀 연관성을 느낀 적도 없었고 사실 너무나 오래 무관심으로 살아왔던 터라 아주 가끔 방문에 아이유와 우리나라 지도가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이 포스팅을 쓰면서 둘의 관계를 보니 아마도 내 무의식 속에 남아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주얼 서스펙트라는 영화에서 절름발이가 자신과 대화하는 형사의 사무실 벽에 붙여진 수많은 신문기사의 헤드라인을 가지고 이야기의 연관성을 만든 것처럼 나도 방문에 붙여진 단 두장의 포스터로 내 삶의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고 말았다.


제주에 간다면 벽 한 곳에 제주의 지도를 붙여놓고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의 얼굴 전체를 항상 보고 싶다.
안 가본 곳이 없도록 모두 표시해놓고 싶다.
나는 살고 싶다.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