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만 매일 살면 오래오래 살 것 같은 기분이다.
아침 9시쯤에 일어나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물 한잔을 마신다.
다른 가족들은 새벽에 일찌감치 낚시를 하러 떠났고 집에는 부모님과 나만 있다.
잔잔한 추석 연휴 첫날이다.
내가 하는 일은 일 년에 딱 3번만 휴식을 갖는다.
새해 1월 1일 그리고 설과 추석 명절 외 여름휴가가 전부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정상근무라서 일요일이 거의 유일한 휴식이고 나머지 공휴일이나 빨간 날은 쉬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명절처럼 4일 이상 쉬는 기간은 뭔가 마음도 몸도 낯설다.
뭔가를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뭔가를 하기에도 애매한 시간.
햇빛이 쨍해서 잠깐 집 밖으로 나왔다.
빌라 고양이가 담벼락 위와 아래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평소에 내가 일하러 가는 동안 지금 내가 보는 조용한 일상이 이곳에서는 매일 반복되고 있었으리라.
내 발소리에도 깨지 않는 고양이를 쳐다보며 잠깐 하늘로 눈길을 돌린다.
모든 것이 너무 평화롭다.
어느 순간부터 항상 제주의 풍경을 머릿속에 심고 살았지만 내가 사는 이 집 앞의 풍경에도 평화와 쉼은 있었다.
다만 이 일상도 매일 반복되면 치열한 평화가 되겠지.
전 부치시는 어머니를 도우다가 넷플릭스를 잠깐 시청한 후 피곤함에 낮잠을 즐기려 눈을 감았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소중한 낮잠이다.
선풍기는 내 얼굴에 자꾸 차가운 한숨을 내뿜고 데스크톱 본체에서는 골골대는 앎음소리가 난다.
두 기계가 자장가처럼 나를 재워준다.
한 시간 정도 잠에 들었지만 무슨 꿈을 꾸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
머리는 약간 띵하고 목이 말라 부엌에서 물 한잔을 마신다.
화훼시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던 시간들이 하루 만에 마치 꿈처럼 느껴진다.
좋기도 하고 좋지도 않은 그런 꿈.
다시 밖에 나가 뒷산에서 넘어오는 상쾌한 공기를 들이마신다.
고양이는 이제 깨어있는 채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빌라들 사이 골목길에 걸린 액자에 노을 지는 하늘이 보인다.
너무 조용해서 이상한 하루다.
나는 지금 어떤 순간들을 살고 있는 걸까.
정말 오랜만에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보낸 하루다.
이렇게만 매일 살면 오래오래 살 것 같은 기분이다.
내일은 또 어떤 삶이 시작될지 기대가 된다.
오랜만에 명절이고 오랜만에 낯선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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