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에서 반복되는 지루한 시간을 편집하면 드라마처럼 사건과 사고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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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보고 있는 모든 드라마의 주인공이 나라고 가정해보자.
극 중 모든 인물이 나에게 대화를 건넬 것이고 그들이 하는 말은 모두 나에게 하는 말이 된다.
사랑과 치유가 담긴 따뜻한 말도 있을 것이고 공포와 독이 묻은 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감내해야 한다.
극이 막을 내리고 검은 화면이 뜰 때까진 난 모든 말과 상황을 견뎌야 한다.
이야기가 시작되면 모든 등장인물 특히 주인공 주변의 인물을 자세히 소개하는 것처럼 짧은 시간 안에 나는 그들과 아는 사이가 된다.
그들이 힘들어할 때 반대로 내가 위로를 건넨다.
주인공이 나라고 인식하는 순간 모든 행동과 대화가 깊이 스며오고 스마트폰이나 다른 어떤 것에 주의를 뺏기지 않는다.
왜냐면 저 화면 속의 모든 것이 현재 내 인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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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성별이 바뀌고 시대가 바뀐다.
주인공이 등장하지 않는 장면도 있다.
그 순간에 나는 시공을 초월해 내가 없는 장소를 살피고 그들의 행동과 대화를 엿보게 된다.
때로는 모든 등장인물을 나로 인식할 수도 있다.
극 중 모든 원인과 결과가 인물들을 엮고 희극과 비극의 엔딩을 나눈다.
극이 모두 끝났을 때 나는 그 이후 어둠 속의 이야기들을 상상하며 나라고 생각했던 인물들의 미래를 유추해본다.
이 세상 나 외의 타인들은 모두 또 다른 나의 모습이다 라는 말이 극을 통해서 이해되고 실현된다.
실제 세상에서는 내 눈을 벗어난 타인의 또 다른 속사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알 수 없다.
하지만 극을 통해서는 신의 눈이 되어 등장인물 모두의 삶을 지켜볼 수 있다.
이해하고 이해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인간을 위한 친절이고 다른 이름으로 벌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원수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가.
그들이 내게 행한 배신과 온갖 악행의 이유들을 신의 눈이 되어 지켜볼 수 있는가?
그럴 수 있었다고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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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의 지루한 삶이 아닌 기승전결을 갖춘 삶을 살아간다면 인생의 순간순간이 얼마나 값질 것인가.
편집을 통해 한 사람의 일생이 짧게 압축되기도 한다.
등장인물을 통해 생의 끝을 맞기도 하며 지금껏 꿈꿔보지 못한 직업과 재능을 경험하기도 한다.
여기까지 썼을 때 난 깨달았다.
드라마의 모든 것들이 꿈에서 경험한 모든 것과 같다는 것을.
한 가지 다른 점은 이야기는 끝이 있지만 꿈은 끝을 보지 못한 채 중간에 깨어버린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금방 빠져드는 나는 드라마와 영화 혹은 소설을 통해 다른 삶을 체험한다.
예술영화가 아닌 이상 어떠한 이야기도 현실의 내 삶처럼 지루한 일상을 초단위로 반복하지 않는다.
항상 사건의 중심에 있으며 인물들의 행동이 가져오는 파장이 이야기에 즉각 반영된다.
이 행동력과 시간의 축약을 내 삶에 적용해 본다면 내가 무언가를 쓰고 그 반응과 결과는 몇 분 또는 즉각 반영된다.
중간의 지루한 기다림의 시간을 편집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어제 뭘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었고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어제에 오늘을 덮어 씌워도 틀린 점이 드러나지 않는다.
뇌는 불필요하고 지루한 반복의 기억을 싫어하고 중요시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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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삶에서 반복되는 지루한 시간을 편집하면 드라마처럼 사건과 사고만 남는다.
나의 행동이 즉각 반영되고 반응이 돌아온다.
내 인생의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게 된 순간들과 그들과 나눴던 인생의 대화를 기억해내었다.
그리고 내 일생의 중요한 순간들에 섞어보자.
난 알게 됐다.
기억나는 내 인생의 순간들을 하나로 엮으면 정말 드라마 한 편 만들기에도 짧다는 것을.
40년을 넘게 살았어도 내가 기억하는 유의미한 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인생은 지루한 일상으로 채워졌다는 거구나.
끝을 모르는 우주가 암흑으로 채워진 것처럼.
이 지루함을 깨는 방법은 오직 행동을 일으켜 사건을 만드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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