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허상이다.
새벽에 넷플릭스에서 영화 한 편을 골라보기로 했다.
연휴라서 늦게까지 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자유다.
왠지 예전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미래를 다루거나 가상현실을 다룬 SF 장르를 찾아보았다.
인터스텔라, 마이너리티 리포트 등 여러 번 보았던 영화들을 흛어보다가 갑자기 눈길이 가는 영화 제목이 있었다.
13층.
비디오 가게를 드나들던 시절에 익숙하게 본 제목이었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영화를 다 본 후에도 감이 안 잡혔다.
다만 영화를 소개해주는 공중파 방송에서 자주 다뤘던 영화이기에 대충 나오는 인물의 얼굴들과 시대 배경 정도는 익숙했다.
내가 13층이라는 영화의 제목을 잊지 못하는 이유는 같은 년도에 비슷한 가상현실 영화들이 나왔던 것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 전에는 다크시티라는 내가 아끼는 영화가 있고 13층과 같은 해에 나온 영화는 제목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도 이 영화 때문에 13층은 전교 2등 같은 위치에 머무른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바로 검색해보니 같은 해에 개봉한 가상현실 영화가 매트릭스였다.
가상현실 류의 바이블 급으로 인정받는 영화와 한 해에 개봉하여 안타깝게 빛을 보지 못한 영화다.
13층은 매트릭스처럼 뛰어난 액션이나 CG그래픽이 난무하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매트릭스가 영화의 스토리나 주제, 상징성도 더 훌륭한 영화다.
13층은 특유의 복고풍 분위기와 단순한 CG그래픽으로 가상현실을 표현한다.
가상현실 속의 또 다른 가상현실이라는 중첩을 이야기에 적절히 표현하였다.
얼굴과 신체는 같지만 훨씬 고차원 세계의 존재가 접속됨으로써 인격이 변하고 아바타 같은 인형으로 전락하는 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 속에는 세상의 끝이 있고 그곳은 출입금지 장애물로 막혀있지만 개의치 말고 끝까지 가보라고 한다.
인물이 세상의 끝에 도달한 곳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생각해보니 꼭 영화 속 이야기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세계적인 유명인사나 테슬라의 CEO 일론 머스크는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럼 현재 이 지구상의 끝 즉 영화 13층 에서 말하는 세상의 끝은 어디일까?
지도상에 혹은 명칭이 세상의 끝이라고 불리는 장소들이 몇 군데 있지만 그것이 세상의 끝은 아닐 것이다.
그 장소에 살고 있는 동네 사람에게 저 절벽 끝에 세상의 끝이 있다고 말하면 우스운 얘기일 것이다.
따라서 세상의 끝은 이 세상 모든 사람 본인의 기준으로 사방 360도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나는 해외로 여행을 가본 것이 태국의 푸켓뿐이고 세상의 끝에 다다를만한 먼 거리를 여행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영화 속 상상력을 확인을 할 방법은 없지만 아직 그런 사례가 없으니 그러려니 한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사는 세계가 시뮬레이션임을 깨닫고 이런 대사를 한다.
모든 것이 허상이다.
이 대사를 듣고 나는 영화 전체를 통틀어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대사에 압축되어 있다고 느꼈다.
양자물리학의 관점에서 이 세상은 텅 비어있고 불교에서는 무아를 말하며 허상에 관련된 흔한 말이 많지만 왠지 이영화에서 말하는 허상이 무겁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새벽부터 저녁 이 시점까지 세상은 허상일지도 모른다 아니 모두 허상이다 라는 혼잣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솔직히 모든 게 허상이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돈도 사랑도 모든 관계도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추석 연휴가 끝나감에 당장 내일 아침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상의 시스템이 시뮬레이션대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나는 그 형식에 맞춰 출근하고 일을 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레벨업을 하듯이 퇴사를 하고 나만의 사업 시스템을 만들어 살아가겠지.
13층에서는 배경이 LA지만 자동차로 운전하여 세상의 끝으로 갈 수 있다.
나에게 그런 세상은 어디일까 생각해봤더니 바로 제주였다.
지리적으로 멀지도 않지만 나는 항상 제주를 꿈꾸며 그곳에서 사는 모습을 상상한다.
영화에서는 가상현실 기계의 시스템을 이용해 전력과 기술의 테크놀로지로 가상의 LA로 도착하지만 나는 기계의 도움 없이도 인간의 상상만으로 현재가 아닌 미래의 제주에 도착한다.
비행기를 통해 이착륙하는 것은 모두 생략되었고 황혼이 짙게 물들며 가녀린 바람에 높이 자란 잡초와 풀들이 고양이 털처럼 부드럽게 내 손목을 감싸는 느낌을 경험한다.
제주의 그 장소엔 나와 똑같은 아바타가 있고 난 그의 몸으로 들어가 미래의 제주를 체험한다.
행복한 나의 모습과 가족 혹은 연인, 친구들이 그대로 존재한다.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인지 아닌지가 중요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창조 목적이 사랑을 주고받고 행복하고 풍요롭게 사는 것이라면 이 세상의 시스템을 잘 이용해서 그렇게 살면 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허상이다 라는 말을 잘 기억하고 상처받거나 감정의 소비를 막는 것이 더 빨리 행복해지는 지름길이라 느꼈다.
나도 허상이고 나 외의 모든 것 우주 전체가 모두 허상이다.
나는 내일의 출근이 두렵지 않으며 앞으로 펼쳐질 모든 귀찮음들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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