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추운 겨울 월동하는 사람

낮가림 2022. 9. 15.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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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로 추운 게 좋다.






덥지도 시원하지도 않은 꾸물한 날씨다.
매장에서 한가로이 있을 즈음 한 손님이 들어와 물었다.

"월동 가능한 식물이 있나요?"

월동이 가능한 식물은 많다.
한국의 기후를 견뎌내는 자생종이나 야생화등이다.
하지만 그런 식물은 가을이 깊어져야 시장에 나오고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매장에 진열된 식물들도 열대식물들 위주라 추워지는 겨울이 되면 모두 따뜻한 실내로 들어가야 한다.
실내에 있더라도 습도를 맞춰주지 않으면 말라죽거나 병에 걸린다.
월동 가능한 식물이라도 작은 화분에 심어진 어린아이 같은 개체들은 추운 겨울을 밖에서 이겨내지 못하고 얼어 죽는다.
땅에 심겨 대지의 기운을 받거나 어느 정도 목대가 굵어진 식물들만 봄을 볼 수 있다.
손님과 몇 마디를 더 대화하고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나는 아직 제주의 겨울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항상 궁금했다.
아쉽게도 휴가는 여름밖에 없기에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제주의 겨울을 보지는 못한다.
높이 자란 야자수가 차디찬 겨울바람을 견디고 잎사귀 위에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모습이 상상된다.
남부지방이라 열대식물이 계절에 상관없이 잘 자라서 따뜻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의외로 바람이 많이 불어서 더 춥다고도 한다.
아무튼 하얀 제주의 겨울이 궁금하다.



나는 20살 정도까지 패딩이나 겉옷을 따뜻하게 입은 걸로 기억한다.
교복 위에 두툼한 겉옷 하나.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했고 그 당시 나눠준 큰 패딩을 입었었다.
공익근무가 끝난 이후로 현재까지 난 누가 봐도 춥게 입었다.
서른 초반까지는 겉옷을 입지 않고 긴팔만 입은 채 살았다.
그 이후로 이번 봄까지는 얇은 긴팔 재킷 하나만 걸치고 출퇴근을 했다.
직장에 도착 후에는 벗어놓고 밖이든 안이든 반팔만 입고 돌아다녔다.
매서운 바람을 타고 추위가 오는 날은 정말 춥지만 묘한 쾌감이 있다.
손이 온기를 잃고 조금씩 굳어가 휴대폰 키패드가 잘 눌리지 않아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반대로 따뜻한 곳에서 얼었던 몸이 녹아도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냉기와 열기 모두 나를 기쁘게 한다.

사람들은 내게 춥지 않냐고 묻는다.
나를 보고만 있어도 춥다고 한다.
왜 춥지 않겠는가.
나는 기본적으로 추위를 즐길 뿐이다.
집안에서는 따뜻한 방바닥에 이불을 둘러싸고 하고 싶은 것을 하지만 집 밖에서는 아무리 추워도 개의치 않는다.
낮은 온도를 즐기는 몸과 정신의 감성이 있을 뿐이다.
나는 정말로 추운 게 좋다.
그래서 가끔 월동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자생종은 식물 말고 사람에게도 해당되는 말인 것 같다.
덥고 춥고를 반복하는 한국사람들은 다른 환경에서도 잘 살아간다.



이제 선선한 가을이 시작이고 곧 겨울이 온다.
해마다 역대급 추위라고 방송에서 광고를 하는데 겨울이다 라는 느낌만 들었으면 한다.
너무 추우면 너무 힘든 사람들과 동물들 그리고 식물들이 있다.
겨울에 딱 찬물로 샤워한 정도만 추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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