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공포라디오

낮가림 2022. 9. 17.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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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숲을 한밤중에 거닐고 싶다.





나는 무의미한 일상을 보내던 시절 유튜브로 공포라디오를 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지금의 내가 양자물리학과 심상화, 명상 등의 형이상학에 관심을 두는 것처럼, 그때는 공포라는 신비주의에 심취해 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직장, 퇴근길, 집에서 귀신과 사람이 엮인 이야기에 눈과 귀를 내어주었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이상한 일들에 관심을 주었을 때 현실의 무료함과 지쳐가는 정신은 잊을 수 있었다.
살면서 귀신을 본 적은 없지만 이상한 일들은 가끔씩 겪어왔다.
그런 체험들은 소름이 돋고 몸의 감각들을 최대치로 올려주었다.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닌 내부에서 들리는 혼잣말을 들었을 때는 내가 모르는 세상이 분명 있다고 믿었다.




나는 공포를 두려워한다.
요즘은 심야괴담회를 볼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경험을 한다.
집 뒤에 관악산이 있어서 예전에는 늦은 밤에도 산길을 지나야 했다.
지금은 가로등도 있고 주변에 주택도 지어졌지만 오래전에는 불빛도 없고 단독주택 몇 채만 덜렁있는 외진 곳이었다.
내가 실제로 그랬는지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기억 속에 한밤의 등산로를 혼자 걸었던 이미지들이 있다.
그 당시 무슨 생각으로 어린애가 산길을 올라갔는지 아니면 내가 상상한 것인지 불분명하다.
당시에 호랑이무덤이라 불렸던 작은 무덤가도 지나친 기억이 있다.
잊혔던 기억이지만 요새 들어 곰팡이처럼 스멀스멀 기어올라온다.




분명 다 잊고 살았었는데.
블로그를 위해 포스팅을 하다 보니 이런 기억이 있었었나 하고 놀랄 정도로 생생하다.
꿈에서 귀신에게 쫓기던 기억도 난다.
이유는 모르지만 나는 계속 도망을 쳤고 그것에게 내가 숨은 곳을 들켰을 때 극도의 공포를 느꼈었다.
영화나 드라마도 여러 장르가 동시에 방영된다면 공포와 호러 쪽에 먼저 눈길이 간다.
세트나 분위기 만으로도 액션 장르 이상의 긴장감을 불러온다.
일본문화가 아직 개방이 되지 않았던 시절에 어릴 적 소꿉친구가 일본 영화를 테이프에 복사해서 나에게 건네준 적이 있었다.
그 영화는 '링'이었다.
소설과 영화로 그 당시 대히트를 쳤고 공포 장르의 새로운 창조물이 등장했다.
낡은 브라운관 화면 속 우물에서 스멀스멀 기어올라와 기괴한 움직임으로 화면 밖 세상을 향해 다가온다.
긴 흑발 머리를 늘어뜨린 채로 엎드린 후 마치 물속에서 수면 위로 얼굴을 내밀듯이 현실 세상으로 넘어온다.
비디오를 보는 자는 죽는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차원을 넘어온 존재는 '사다코'다.




소설에서 느꼈던 그 기이한 장면을 제대로 표현해낸 영화는 그 당시 대단한 관심거리였다.
불법 비디오테이프로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옮겨지는 전염병 같은 기이한 일이었다.
실제 영화에서 비디오 영상을 본 자는 살기 위해 다른 이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넘겨서 보게 해야 한다.
영화와 현실의 동시성이 일어나고 있었다.
친구에게 비디오테이프를 넘겨받은 나는 부모님이 계시지 않을 때 보면 죽는다는 영상을 보았다.
이후 친구에게 이 비디오를 돌려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화 속 내용에는 비디오를 복사해서 다른 이에게 보여줘야 한다.
친구는 복사된 비디오를 나에게 빌려준 것이고 비디오 시대의 아름다운 공포의 전염이었다.

그 이후 링의 원작은 SF 가상현실 장르로 진화했고 나름 신선한 느낌이었다.
국내와 할리우드에서도 링을 리메이크한 작품들이 나왔고 모두 영화적 재미가 있었다.
물론 사다코 이후 모든 귀신들이 각기춤을 추어버리는 개그가 되어버렸다.
분위기가 고조되고 긴장이 넘쳐야 할 장면에 긴 흑발의 여자귀신이 몸과 관절을 갑자기 꺾기 시작하면 또 사다코야 하는 한숨 섞인 말들이 나왔다.
어쩌면 정말 공포 장르 속 귀신들이 사다코의 원한에 감염된 것인지도 모른다.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유튜브 알림이 온다.
돌비공포라디오 편집본이 올라오고 이상하지만 자꾸 끌리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아마 나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공포와 관련된 이야기에 마음을 줄 것이다.
개인방송의 발달로 우리가 그동안 책이나 공중파 방송에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와 현상들이 소개되고 있다.
과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UFO와 괴물들이 세상을 지배하다가 기술의 발달 이후 모습을 감춘 것 과는 반대로 애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귀신이 볼 수 있는 자들의 증언으로 우리 일상에 함께하고 있다.

공포의 주체는 여러 가지다.
귀신같은 인간 이외의 존재이거나 혹은 섬뜩한 사람이거나 이상한 장소, 가난 같은 상황도 있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지만 신비스러운 일들과 양자물리학에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언젠가는 스스로 공포의 주체를 넘어서는 존재가 되길 바라며 제주의 숲을 한밤중에 거닐고 싶다.
친구와 혹은 귀신과 함께 걷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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