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단순한 인생

낮가림 2022. 9. 20.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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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우고 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꽉 채우고 나서야 잃어버린 공간을 그리워했다.






단순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유튜브와 책을 보면 미니멀리스트와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넓은 집과 많은 물건을 넘치도록 소유한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집과 물건들을 처분한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사람보다 자연이 더 많은 지역으로 떠난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가지고 몇 벌의 옷으로만 일 년 내내 살아간다.
그들은 물욕을 최대한 참고 꾸미는 거에 시간을 들이지 않으니 오직 자신의 발전과 휴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적은 물건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몇 년 전에 집 바닥에서 물이 새었던 적이 있었다.
보일러 온수가 돌아가는 관이 오래되어서 삭았던 것이다.
장판을 드러내고 바닥을 해머로 부숴야 했기에 집에 있는 짐들을 다 드러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방마다 너무 많은 잡동사니들이 있었고 쓰지도 않는 그런 죽은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철물점에서 커다란 재활용 비닐봉투를 묶음으로 사 왔고 한쪽 구석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먼지 쌓인 물건들을 하나씩 만져보고 열어보고 봉투 안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고 굉장히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왔다.
가구들을 옮겨서 정리한 후 장판을 벗기고 바닥을 깨버렸다.
현대식 호스로 교체한 후 다시 시멘트로 바닥을 메꿨다.




바닥을 깨면서 나온 흙먼지, 돌가루들을 모두 닦아내고 다시 새 장판을 깔았다.
도배를 새로 하고 지저분한 곳을 수리하였다.
단지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해서가 아니라 방안에 최소한의 짐만 있으니 내가 알고 있던 방이 아니었다.
20년을 넘게 살고 있는 집이었지만 다른 집에 온 느낌이었다.
짐이 사라지니 내가 보지 못하거나 생활하지 못한 공간이 드러난 것이다.
그때 알았다.
최소한의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 빈 공간의 여백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잠시 동안 그런 여유가 행복했다.
바깥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돌아오면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빈 공간에서 여유를 느꼈지만 반대로 그 빈 공간을 채우자는 욕망이 일어났다.
나는 잠들어있던 용을 깨우듯 욕망에 눈을 떴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쇼핑은 또 다른 힐링이 되었다.
여러 전자기기와 가수들의 음반들이 모여졌고 책도 한 구석에 쌓이기 시작했다.
물건을 빼고 텅 빈 박스들은 마치 테트리스 블록처럼 방 한 구석에 오밀조밀 쌓이기 시작했다.
현실은 천장까지 박스가 닿아도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방은 새로운 물건들로 치장되었고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흘러서야 예전의 그 수수한 모습이 그리워졌다.
눈길 돌리는 곳에 빈 바닥과 빈 벽이 아닌 각종 브랜드의 로고와 현란한 컬러로 뒤덮인 물건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난 비우고 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꽉 채우고 나서야 잃어버린 공간을 그리워했다.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양자물리학, 심상화, 초월자 마인드, 명상, 긍정적 사고 등 많은 것을 집어넣고 소화시키려 하지만 좋은 것도 쌓이기만 하면 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은 저번부터 종이에 적고 있던 나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해야겠다.
단순한 삶의 지침서 같은 건데 딴짓 안 하고 적힌 매뉴얼대로 당분간은 살아볼 것이다.
예전에는 빨리 시간이 흘러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시간이 아깝고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시간을 알차게 쓰려 노력하는 만큼 휴식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잠이 안 올 때는 오늘 블로그 뭘 써야 하지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으면 얼마 후 잠이 든다.
복잡한 고민 끝에 얻어걸린 단순한 수면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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