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비우고 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꽉 채우고 나서야 잃어버린 공간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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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인생을 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하는가.
유튜브와 책을 보면 미니멀리스트와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많이 보인다.
넓은 집과 많은 물건을 넘치도록 소유한 이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를 깨닫고 집과 물건들을 처분한다.
더 작은 집으로 이사를 가거나 사람보다 자연이 더 많은 지역으로 떠난다.
꼭 필요한 물건만을 가지고 몇 벌의 옷으로만 일 년 내내 살아간다.
그들은 물욕을 최대한 참고 꾸미는 거에 시간을 들이지 않으니 오직 자신의 발전과 휴식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을 수 있었다고 한다.
나도 적은 물건으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한다.
몇 년 전에 집 바닥에서 물이 새었던 적이 있었다.
보일러 온수가 돌아가는 관이 오래되어서 삭았던 것이다.
장판을 드러내고 바닥을 해머로 부숴야 했기에 집에 있는 짐들을 다 드러내야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방마다 너무 많은 잡동사니들이 있었고 쓰지도 않는 그런 죽은 물건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철물점에서 커다란 재활용 비닐봉투를 묶음으로 사 왔고 한쪽 구석부터 손을 대기 시작했다.
먼지 쌓인 물건들을 하나씩 만져보고 열어보고 봉투 안에 던져 넣기 시작했다.
그렇게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고 굉장히 많은 양의 쓰레기가 나왔다.
가구들을 옮겨서 정리한 후 장판을 벗기고 바닥을 깨버렸다.
현대식 호스로 교체한 후 다시 시멘트로 바닥을 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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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깨면서 나온 흙먼지, 돌가루들을 모두 닦아내고 다시 새 장판을 깔았다.
도배를 새로 하고 지저분한 곳을 수리하였다.
단지 장판과 도배를 새로 해서가 아니라 방안에 최소한의 짐만 있으니 내가 알고 있던 방이 아니었다.
20년을 넘게 살고 있는 집이었지만 다른 집에 온 느낌이었다.
짐이 사라지니 내가 보지 못하거나 생활하지 못한 공간이 드러난 것이다.
그때 알았다.
최소한의 것도 중요하지만 집안 빈 공간의 여백이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을.
잠시 동안 그런 여유가 행복했다.
바깥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집에 돌아오면 힐링이 되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빈 공간에서 여유를 느꼈지만 반대로 그 빈 공간을 채우자는 욕망이 일어났다.
나는 잠들어있던 용을 깨우듯 욕망에 눈을 떴고 물건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쇼핑은 또 다른 힐링이 되었다.
여러 전자기기와 가수들의 음반들이 모여졌고 책도 한 구석에 쌓이기 시작했다.
물건을 빼고 텅 빈 박스들은 마치 테트리스 블록처럼 방 한 구석에 오밀조밀 쌓이기 시작했다.
현실은 천장까지 박스가 닿아도 절대 소멸하지 않는다.
방은 새로운 물건들로 치장되었고 다른 모습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흘러서야 예전의 그 수수한 모습이 그리워졌다.
눈길 돌리는 곳에 빈 바닥과 빈 벽이 아닌 각종 브랜드의 로고와 현란한 컬러로 뒤덮인 물건들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난 비우고 나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꽉 채우고 나서야 잃어버린 공간을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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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양자물리학, 심상화, 초월자 마인드, 명상, 긍정적 사고 등 많은 것을 집어넣고 소화시키려 하지만 좋은 것도 쌓이기만 하면 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일단은 저번부터 종이에 적고 있던 나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해야겠다.
단순한 삶의 지침서 같은 건데 딴짓 안 하고 적힌 매뉴얼대로 당분간은 살아볼 것이다.
예전에는 빨리 시간이 흘러 퇴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시간이 아깝고 소중함을 느끼고 있다.
시간을 알차게 쓰려 노력하는 만큼 휴식도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몇 번의 경험 끝에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잠이 안 올 때는 오늘 블로그 뭘 써야 하지 생각하며 눈을 감고 있으면 얼마 후 잠이 든다.
복잡한 고민 끝에 얻어걸린 단순한 수면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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