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다음화 보기

낮가림 2022. 10. 6. 19:30
반응형


과거만 돌아보며 이전 화만 무한으로 돌려보기를 반복할 뿐이다.






얼마 전에 강의 수강과 필기용으로 갤럭시 탭 S8 울트라를 구매했다.
생산성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산 제품이지만 워낙 큰 화면이라 영화와 드라마를 시청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행사 이벤트로 디즈니 플러스 1년 구독권도 선물 받았고 이 계정을 친구와 프로필을 나눠서 이용 중이다.
디즈니 플러스에서 시청 중인 작품은 최근에 방영되어 호평과 시청률을 모두 잡은 천원짜리 변호사라는 드라마다.
남궁민이 능청맞은 변호사 역할로 등장하는데 어느새 연기의 신이 되어버린 듯하다.
과거 김명민과 조승우 등이 그러한 타이틀을 쥐고 있었는데 남궁민도 그들과 또 다른 연기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드라마에 푹 빠져 있을 때 시청 중인 회차가 끝이 나면 자동으로 넘어가는 고작 몇 초를 참지 못하고 수동으로 다음 화로 넘어가기를 클릭한다.
내 인생도 그러한가?
드라마 배역들의 감정과 상황들에 몰입해서 어서 빨리 다음회차를 연이어 보기를 원한다.
그것이 비록 비극적인 진행과 인물들의 갈등이더라도 나쁜 일이 오면 그 후에 반드시 좋은 일이 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고 시청하게 한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 이 인물에게 신의 축복이 내리기를, 그래서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 내 마음에도 평화와 안정감이 생기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 인생의 다음화를 보기 위해 혹은 체험하기 위해 다음화 보기 버튼을 클릭하는데 망설인다.
조금이라도 더 시간의 진행을 늦추려 하고 출근하는 아침을 괴로워한다.
분명 드라마 속 인물에게 주어지는 큰 고통과 슬픈 감정이 없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게 됨에도 나는 망설이고 있다.
무료하고 게으른 일상이 내게 주어지는 고통임을 모른 채 살아간다.
또다시 습관을 미룬다.
정지된 활자 읽기를 자꾸 뒤로 미루고 내 눈을 스쳐 지나는 움직이는 영상에 생각을 뺏긴다.
주변 상황이 아닌 혼자 고통받고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드라마는 본 적이 없다.
잘 만들지 않으면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그 재미없는 이유가 바로 내면과 다툼하는 보통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거울 같은 내 모습을 화면 속에서 다시 보는 것은 우울하거나 공허하다.
현실의 부조리를 어떤 꾸밈도 없이 그대로 보여준 송곳이라는 드라마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은 이유도 그러할 것이다.
꾸며지지 않은 날것 그대로는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는 항상 내 안의 나와 다투고 삐지고 외로워한다.
분명 외형적인 나는 하나지만 수많은 감정들이 인격을 가지고 한 곳에 모여있다.
대부분의 감정들이 새로운 날을 받아들이길 거부한다.
늘 살던 대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게 다음화는 없다는 듯이 느릿느릿 미적미적 행동한다.
과거만 돌아보며 이전 화만 무한으로 돌려보기를 반복할 뿐이다.




어떻게 하면 다음화를 빨리 클릭할 정도로 내 인생이 재밌어질까?
당장 내일이 너무나 궁금하고 미칠 정도로 재밌어질 수 있을까?
천원짜리 변호사의 남궁민이 맡은 배역을 보면 앞으로의 행동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그가 어떤 행동과 선택을 할지 시청자는 기대를 하며 보게 된다.
마치 아무 계획도 없다는 듯이 능구렁이처럼 행동하는 그를 보면서 내 삶에 즉흥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설계하는 것보다 그 순간 실행하는 직관력이 나에게는 필요하다.
간절하지 않은 가벼움을 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