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나의 관찰일지

낮가림 2022. 10. 7.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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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한 일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새벽에 잠깐 깰 때마다 찬바닥이 몸을 움츠리게 한다.
확실히 차가운 영하가 오고 있다.
일하는 매장에 새로 들어온 알바생이 있다.
의욕도 넘치고 최선을 다하려 한다.
나는 그에게 그동안 배우고 체득한 일하는 방법을 전수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별 의미 없는 기술이지만 먹고살아야 하는 자에게는 당장에라도 필요한 기술과 일하는 감각이다.
일하는 방법과 차례 등을 지도해 주면서 나도 모르게 달라진 내 모습을 눈치챘다.
일 배우는 자에게 모범이 되고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고자 나는 평소와 다르게 먼저 앞에 나가 적극적이고 자신감 있게 일하고 있다.
손님들에게 더 먼저 많이 인사하고 매장에 한 발을 내딛도록 안내를 한다.
수년 동안 머리와 몸으로 체험하여 얻은 식물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고 당황하는 모습 없이 자신감 있게 손님을 대하고 있다.

초심을 가진 자에게 가장 중요한 기초를 가르치려 하자 스스로 초심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말이 있다.
가장 빨리 지식과 기술을 얻는 방법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다.
잊고 지냈던 경험과 기술을 다시 체득한 느낌이었다.
또한 누군가에게 지식을 나누어주는 정보교환이 나에게 기분 좋음을 선사했다.
그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손님들의 심리를 설명하면서 사실 나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이 왔다.
살면서 많은 해답은 웹이나 유튜브, 책이 아니라 어쩌면 내게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멍 때리고 지내는 시간이 많았을 지라도 느릿느릿 흘러가는 의미 없는 순간 속에서 나는 항상 뜬눈으로 관찰을 해왔다.
지나가는 손님들의 행동과 반응을 관찰했고 때로는 손님 한 명 없는 텅 빈 통로를 보았다.




수많은 일들을 보았다.
팔리지 않는 식물이 눈부시게 자라나는 모습을 매일 관찰하기도 했다.
태풍이 보낸 강풍이 하우스 비닐 아래로 철골을 휘어버리며 지나가는 모습도 보았고, 생업이 달린 이들의 공포도 목격했다.
어떤 나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며 건강한 아이인지 알게 되었다.
단지 나는 관찰했고 기록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떠한 순간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단지 알바생에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설명하기 위해 입을 뗐을때, 이곳에서 지내온 수년간의 기억과 외로움이 떠올랐다.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관찰당하는 대상이 되었다.
손님들은 식물을 관찰하지만 새로 온 알바생은 나의 일거수 일투적을 관찰한다.
내가 하는 행동이 곧 그가 해야 할 기본이고 일적인 나의 모습이 미래의 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아야 하고 청소도 자주해야 하며 더 자주 움직여야 한다.
누군가 나를 관찰한다는 사실이 이리도 재미날 줄이야.
사실 나는 너무 재밌다.
무료한 일터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구피만 가득한 어항에 큰 물고기를 넣어 난리법석을 피우게 하듯이 내 마음에는 큰 파동이 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