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미래의 나는 분명히 방구석에 있을 것이다.
나의 목표는 항상 원안의 중심에 있었다.
목표가 나에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목표에서 멀어진 것이었다.
사실 제주는 바다 건너 그 자리에 항상 있었다.
제주는 나에게서 멀어지지도 바다에 흘러가지도 않았다.
내가 목표를 멀리하듯이 제주에서 점점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감정에 치우쳐 혹은 두려움에 나는 나이가 들면서 점점 뒤로 걷는 법을 익혀나갔다.
나는 끊임없이 지혜를 가졌다고 스스로에게 자백했지만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들에 시간을 쏟지 않고 나의 우선순위는 게을러지는 거야라며 시위한다.
갑자기 처음으로 작성했던 블로그 첫 글을 기억해본다.
제주에서 만난 잊지 못할 바람에 대한 찬양글이었다.
그 바람은 돌고 돌아 지금은 어디 있을지 모른다.
나에게 그날의 바람은 오감으로 남아서 제주를 환상의 땅으로 기억하게 만들어줬다.
그래 처음 그 감정들을 잊지 말자.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내가 한 곳만 바라보며 애를 쓰기 때문이다.
내가 방향을 돌려서 시선을 바꾸어보자.
방향을 바꾸어 뒷걸음질 치면 제주에 가까워진다.
이상한 얘기지만 내가 서울에서 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인정하는 순간 나는 완전히 내려놓고 제주에 집중할 수가 있다.
나는 제주에서의 새 삶이라는 기대감과 떨림에 신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도망갈 구석을 정해놓았는지도 모른다.
아니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곳이 구석이고 우리 집 방구석이다.
매일매일 공을 들여 비행기가 추락하는 뉴스와 기사를 검색하고 상상 속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반복하면 된다.
어느 날부터는 공항 근처에도 얼씬하지 못할 것이다.
제주로 가지 않을 수많은 변명과 이유를 만들어내고 나는 기뻐한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여름휴가를 제주로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의 작은 동네를 바라보며 하루마다 조금씩 멀리 제주방향으로 신발 뒤축을 내디뎠다.
천천히 땅끝에 다다르고 뒷걸음질로 물 위를 걸을 수 있을까?
썰물과 함께 제주로 떠나는 나를 상상한다.
내가 제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블로그에 기록하기 때문이다.
나의 시선으로 기록된 제주는 지극히 나를 위한 소중한 공간이다.
계획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하지만 미래의 나는 분명히 방구석에 있을 것이다.
서울이 아닌 제주 어느 곳의 방구석에서 뒤축에 구멍이 난 신발을 보며 씨익 웃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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