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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재무제표 숫자와 언더스탠딩 이재용 회계사

낮가림 2022. 10. 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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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사진 출처 ㅡ 유튜브 채널 '언더스탠딩')



사실 난 숫자랑 친하지 않다.
초등학교 시절에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외의 모든 산수 공식을 포기했었다.
그 시절이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산수 점수가 형편없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배운 수학과목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인의 언어였고 이 세상은 내가 읽을 수 있는 한글과 보아도 해석되지 않는 수학공식으로 나뉘었다.
단지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1, 2, 3, 4... 숫자뿐이었다.
심지어 예전에 작은 마당에서 기르던 개가 뭔가를 물어뜯는 것을 좋아해서 가방에 들어있던 교과서를 던져주었는데 그 책이 수학책이었다.

내가 다시 싫어도 억지로 숫자를 가까이해야 했던 이유는 도매시장에서 일을 하게 되면 서다.
식물을 다루고 판매하는 화훼단지의 특성상 꽃집을 운영하는 도매 손님 외에도 식물 구경을 하러 놀러 오는 소매 손님들도 있다.
또 시장에서는 한 업종으로 경쟁하는 다양한 매장이 서로 붙어있기에 가격 노출을 하지 않는다.
소매 손님과 시장 경쟁으로 가격을 모두 외우고 있어야 하고 도매 손님이 물어봤을 때만 가격을 말해주며 오픈한다.
어떻게 보면 기억력과 암기의 영역이라고 볼 수도 있다.
허나 최종적으로 볼펜을 들어 영수증에 수기로 작성을 하고, 계산기도 없이 숫자를 들여다보며 머릿속 암산으로 가격의 합을 생각해낸다.




머리가 지끈하기도 하지만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어쩔 수 없이 숫자와 함께해야 한다.
원화 채굴을 하고 있는 노동 수익 외에도 나는 부가적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멋도 모르고 시작했었다.
가지고 있는 자산을 분배하자는 생각으로 미국 주식을 먼저 매수했고 그 시작이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다음 매수 주식이 세계 최강기업 애플이었다.
그 후에 구글을 샀고 이후로 에어비앤비, 아마존, 테슬라, 로블록스 등 어느 정도 업계에서 인정받고 안정적인 테크 우량주 등을 중심으로 매수했었다.
그러면서 차츰 주식 관련 영상들을 접하기 시작했고 정보를 모아갔다.
그리고 그중에 진짜로 돈을 벌었다는 주식고수들은 꼭 이것을 조언했다.
투자하기 전에 그 기업의 재무제표를 꼭 보라고.

재무제표라...
숫자로만 이루어진 서류를 나는 볼 자신이 없었다.
봐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그렇게 파고들어서까지 주식을 열심히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다 며칠 전에 유튜브를 뒤적이다 눈길이 가는 썸네일을 하나 봤다.
적자 회사들에 관한 문구가 적혀있었고 내가 잘 알거나 사용 중인 서비스를 운영하는 기업의 로고들이 여럿 있었다.
안경을 쓴 회계사 한 분이 썸네일에 있었는데 솔직히 큰 관심은 없었지만 내가 사용 중인 서비스들이 적자였다는 사실이 궁금했다.
비상장주식에 관심이 있었을 때 토스 모회사의 비상장주식을 사려했었지만 사지 않았었다.
그 후로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었는데 토스의 상황이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스트리밍 동영상 서비스인 왓챠또한 투자를 받고는 있으나 콘텐츠를 사들이는 비용과 이용자 수의 한계 때문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음을 어느 정도 알았다.




언더스탠딩이라는 유튜브 채널이었고 경제를 전문적으로 다루었는데 알고 보니 삼프로TV 채널을 운영하는 진행자분들이 운영하는 채널이었다.
이재용 회계사라는 분이 나오셨는데 적자를 면치 못하는 우리가 익히 한 번쯤은 들어본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보여주셨다.
맙소사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영상을 클릭했는데 숫자 표라니.
나는 끌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궁금해서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이재용 회계사는 재무제표를 자세히 설명해주며 영업이익과 매출, 공헌이익등 처음 들어보는 용어를 꺼내며 차근차근히 얘기해 주었다.
나는 순식간에 기업의 재무제표 숫자에 시선을 빼앗겼고 경영자의 오판이 저런 식으로 기업에 적자를 입히는 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여러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계속 보며 깊이 있고 재밌는 통찰력을 가진 그가 존경스러워졌다.
숫자로 이루어진 저 표들에 기업의 모든 것이 담겨있구나.
기억에 남는 따뜻한 서비스나 상품의 체험도 중요하지만 결국 기업은 이윤을 내야만 성장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숫자들을 계속 보고 숫자에 대한 해석을 듣자니 지금껏 내가 하려던 사업이나 서비스에 대한 모든 기초공사가 바뀌기 시작했다.
숫자로 시작해야 했다.
브랜드의 감성과 퍼스널 컬러도 아니고 따뜻한 로고도 아니며 사업자의 위대한 사명도 아니다.
지속되려면 숫자를 읽을 줄 알고 해석해야 했다.
난 그 후에 한 시간 가까이 되는 이재용 회계사가 출연하는 영상들을 계속 찾아봤다.
정말 오랜만에 먹구름이 개인 기분이었다.
전문가인 회계사가 보는 재무제표 해석과 일반인이 보는 재무제표의 깊이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만약 내가 어떤 업종과 서비스를 하려 한다면 비슷한 업종의 대표 브랜드들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공시된 기업들의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다면 적어도 따라 하느라 소모되는 시간적, 물리적 낭비를 막을 수 있다.




언론과 미디어, 광고 등으로 포장되어 보이는 화려한 스타트업의 서비스가 겉으로는 참 멋지고 아이디어가 넘쳐 보인다.
하지만 숫자로 보니 몇 년간 적자였고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있기에 투자자금으로 버티는 거였다.
현재 초유의 경제상황이 왔고 영업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는 더 이상 사모펀드가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얼마 전 오늘회라는 수산물 당일 배송 스타트업은 일시적으로 운영을 중지했으며 근무 중인 직원들은 권고사직을 당했다.
현재 홈페이지는 들어갈 수 있지만 메인이 되는 회를 비롯한 수산물은 모두 사라졌다.

숫자하고 친해질 일이 없다고 생각한 삶이었는데 이제 숫자에 관심과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역시 학교 다닐 때 재미없는 과목이라도 재미있게 몰입을 시킨 선생님이 몇 있었다.
이재용 회계사님이 수학선생님은 아니지만 나에겐 처음으로 숫자에 흥미를 느끼게 하신 분이다.
큰 공부였고 깨달음이었다.
살아봐야 안다.
세상은 내가 모르는 것 투성이구나.
사업도 제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