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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이번 생

낮가림 2022. 11. 2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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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삶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은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사진 출처 ㅡ JTBC 공식 홈페이지)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매일 아등바등 대지만 드라마의 유혹은 끊기가 힘들다.
그만큼 이야기가 주는 매력은 중독이다.
배우 송중기가 주연을 맡은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을 보게 됐다.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이며 특이하게도 OTT 플랫폼 TVING, NETFLIX, Disney+ (티빙, 넷플릭스, 디즈니 플러스) 세 군데서 모두 서비스 중이다.
참고로 나는 세 곳의 OTT 플랫폼을 모두 이용 중이다.


(사진 출처 ㅡ JTBC 공식 홈페이지)



이야기의 플롯은 간단하다.
대한민국 최고의 거대기업 순양에서 총수 일가의 오너리스크를 관리하는 비서 윤현우가 살해를 당한다.
윤현우의 영혼은 과거로 돌아가 순양 그룹의 재벌가 막내아들로 회귀하고 두 번째 인생을 살게 된다.
회귀의 뜻은 '주인공이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 새로운 인생을 사는 내용'이다.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소재이고 기본적으로 판타지가 가미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이 단순하고 복사된 것 같은 이야기가 내게 울림을 주었던 것은 내가 살아왔던 과거를 말하기 때문이다.
배우 송중기가 연기하는 순양 총수 일가의 비서 윤현우는 누군가의 음모로 살해당한 후 1987년 도에 회귀한다.

나에게도 1987년도의 기억이 있다.
어렸던 내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해였다.
그 당시 너무 어려 동네 밖 멀리서 일어나는 민주화운동과 데모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날것의 냄새는 내가 살던 봉천동 고지대에서도 맡을 수 있었다.
눈이 매워지고 코끝을 찌르던 최루탄 가스의 파편들이 바람을 타고 아이들이 뛰어놀던 골목길 안까지 침입한 것이다.
나보다 형이었고 누나였으며 어른이었던 그들의 이야기는 영화 '1987'에 잘 나와있다.


(사진 출처 ㅡ 네이버 영화 '1987' 포스터)



그다음 해가 너무나도 유명한 1988년 서울 올림픽이었다.
서울 올림픽 공식 마스코트였던 호돌이가 너무 좋아서 기름종이와 도화지에 많이 그렸던 기억이 있다.
내 인생의 거의 첫 기억들은 최루탄 냄새의 따가움과 88 올림픽의 상징들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아이의 시간은 어른보다 느리게 흐른다.
가끔씩 날아오는 하얀 연기가 방구차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어떤 식으로 데모가 일어나는지는 몰랐지만 누군가에게 슬픈 일임을 알고 있었다.
천천히 흐르던 그 시간에 어느 날 모두가 웃고 떠드는 88 서울 올림픽 축제가 시작됐고 신기하게도 그때는 최루탄 가스 냄새가 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최종 순위 세계 4위를 하며 동네 어른들 모두가 기쁨에 들떠있었다.
내가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 시대를 지켜봤을 때, 살해당한 비서 윤현우는 동시대에 재벌가의 어린 막내아들로 회귀한다.


(사진 출처 ㅡ 나무위키 '1988 서울 올림픽')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은 기본적으로 과거의 실제 사건과 작가의 상상을 결합시키면서 진행을 한다.
암울했던 정치적 사건과 테러 등 많은 면들이 그 시대를 아는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도록 드러나 있다.
순양 그룹은 누가 봐도 대한민국 최고의 재벌가 삼성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눈여겨봤던 회차는 본격적으로 과거로 회귀하여 이야기가 시작되는 2회이다.
시작부터 나의 기억처럼 도시 곳곳에 88 서울 올림픽 홍보 현수막들이 붙어있다.
어린 진도준의 가족을 비롯한 재벌가의 자제들이 순양 그룹의 총수인 진양철 회장의 회갑연을 축하하러 자택 정심재로 모인다.


(사진 출처 ㅡ TVING '재벌집 막내아들')


집안의 넓은 중앙에서 한 중년의 여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 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
그리워라 내 사랑아 내 곁을 떠나지 마오
처음 만나고 사랑을 맺은 정다운 거리 마음의 거리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으렵니다.


여가수의 손짓과 부르는 곡을 보니 딱 봐도 누구인지 알듯 하다.
패티 김의 '서울의 찬가'다.
이렇듯 실존 인물들이 가상의 캐릭터들 사이에 섞여있다.
실제 역사적 사건과 실존 인물들을 찾는 재미가 과거로 시간이 역행한 드라마의 포인트중 하나다.

(사진 출처 ㅡ TVING '재벌집 막내아들')



웃기게도 이 순간 나는 제주에서 살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다.
가수 패티 김이 부르는 서울의 찬가는 나에게는 역설적인 의미의 노래다.
물론 그 시절 그 시대의 문화를 노래한 것이다.
지금은 오랫동안 집 안에만 있어도 PC나 스마트폰으로 필요한 의식주를 배달 등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저 시절엔 노는 것도 혼자 놀지 못했다.
밖으로 나와 친구 집 앞에서 친구야 놀자를 외쳐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활동하려면 집 밖으로 나와 서로 부딪치며 살아야 했다.
그 부딪침의 문화가 나는 힘들었다.
지금의 내 정체성을 만든 주체는 40년 간 살아온 서울이라 불리는 괴물이다.
누군가에겐 기회의 땅이고 추억이고, 슬픈 도시다.

나에게 아름다운 서울은 없다.
이미 지나온 과거는 서울에 버리고 제주에서의 미래를 희망하는 나 역시 과거로 다시 회귀한다면 어떤 선택을 내리게 될까?
내가 살아왔던 과거의 역사 그대로 1987년으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재벌가의 막내아들이 아닌 그냥 내가 살았던 내 집, 내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되었다면 말이다.
아쉽게도 어린 시절의 역사적 포인트를 아는 것이 별로 없기에 주식이나 로또로 일확천금을 꿈꾸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내 미래를 확실히 선택할 수 있다.
부모의 권유나 가족의 의견이 아닌 내 생각으로 내 삶을 지배한다.
어린 시절에는 무협지를 많이 읽었지만 다양한 책을 읽을 것이다.
어른이 될 준비를 하며 실행하는 습관을 기를 것이다.

그래 이미 지나간 어린 시절을 다시 상상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물리적인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상상으로 과거의 기억이나 오류를 수정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과거에 공을 들이느니 다가올 미래에 모든 걸 걸고 싶다.
그래서 현재에 충실히 하려 노력한다.
나는 지금 삶에 만족하지는 않지만 내가 나로 태어난 것은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 치열함이 재벌집 막내아들 2회 마지막에 윤현우의 내레이션으로 나온다.


(사진 출처 ㅡ TVING '재벌집 막내아들')



"내가 진도준의 몸으로 태어난 건 빙의도, 시간 여행도 환생도 아니다. 이번 생은 나에게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