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블루스타펀 고사리와 이끼

낮가림 2023. 1. 1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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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니 제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고'로 시작된다.




블루스타펀 고사리




얼마 전 분갈이 작업장에서 내가 키우기 위해 심어놓은 식물이 있다.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이며 고사리과에 속하는 블루스타펀 고사리이다.
도매손님이 없는 한가한 토요일 날 같은 동의 매장에 들러 한 포트만 사 왔다.
실버레이디, 푸테리스, 더피 고사리, 보스턴 고사리, 후마타 고사리, 하트 고사리, 아비스 등 많은 고사리과 식물을 식재해 봤지만 이상하게도 블루스타펀 고사리만 심을 일이 없었다.
잎의 색깔이 오묘한 청록색이고 햇빛이나 환경에 따라 조금씩 색의 차이가 있는 듯했다.




포트를 들어 이미 망가지고 상처 난 잎은 모두 잘라버렸다.
녹소토와 질석을 약간의 상토와 배합해 분갈이 흙을 만들어 심을 준비를 했다.
화분은 투명한 유리화분을 골랐다.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구입한 지 약 2년이 넘은 화분인데 당시 수입품이라 2만 원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한 제품이다.
매장 안에는 화분 수입업체를 통해 도매가격으로 납품받는 화분들도 많지만 대부분 사기화분과 토분 종류라서 특이한 소재를 써보고 싶었다.
고사리과 식물과 잘 어울려 보인다.




심어놓으니 투명화분 안으로 블루스타펀 고사리의 뿌리가 살짝 드러나 보인다.
질석의 표면에서 보이는 금색의 컬러가 반짝이고 입체적인 느낌을 보여줘서 맘에 들었다.
분갈이 후 호스로 물을 한 번 준 뒤에 연탄난로 앞에서 한 번 따뜻한 열기로 수분을 말려준다.
유리화분의 두께가 얇아서 난로의 열이 화분전체로 골고루 퍼졌다.
다시 그늘진 분갈이 작업대 빈 화분 위에 올려놓고 전동분무기로 잎사귀와 흙 위에 전체적인 분무를 해준다.
이제 며칠 혹은 몇 주를 기다리면 적응하는지 못하는지 알 수 있다.




3주 정도가 지나자 새순들이 드러난 뿌리와 흙밑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잘 적응 중이다.
성장하는 새순에 에너지를 몰아주는 활동은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라는 증거다.
나는 사실 고사리과 양치식물을 굉장히 좋아한다.
산에 오르면 흔히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식물이다.
방사형으로 줄기와 잎을 쫙 펼치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다.
심지어 골목길 주변의 깨진 시멘트 토양 위에서도 잘 자란다.
고사리의 새순이 동글게 몸을 말아서 올라오는 그 모습이 가장 매혹적이다.




제주에서도 오름과 삼다수숲, 비자림, 곶자왈 등 많은 숲에서 고사리들을 보았다.
어찌나 아름답던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 보니 제주에서 그 흔한 고사리 반찬이나 음식을 섭취한 적이 없다.
제주 고사리 새순이 그렇게 맛있다는데 다음에 한 번 먹어봤야겠다.


이끼와 달팽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식물 중의 하나가 이끼다.
이끼가 워낙 종류가 많고 다양하기도 해서 예전에 이끼종류 이름도 외우고 했는데 큰 관엽식물에 집중하느라 이름도 다 까먹어 버렸다.
그냥 보기에는 잔디처럼 깔린 부드러운 초록이불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생명체다.
식물포트를 판으로 사 오면 농장의 재배환경에 따라 여러 가지 이끼가 풍성하게 자란 경우들이 있다.
그럴 때는 나에게 주식물은 보이지 않고 밑에 깔린 이끼들만 보인다.
심기 전에 이끼들만 살짝 떠서 빈 화분받침에 얹어놓는다.
분무기로 적셔서 수분을 보충해 주고 가끔씩 확인만 해주면 된다.




마른 이끼도 사 와서 많이 사용해 봤지만 생존력이나 아름다움은 생이끼를 능가하지 못한다.
기다란 포자가 달린 초록의 투명한 이끼에 물을 뿌리고 눈을 가까이 대면 비가 내린 작은 숲처럼 보인다.
예전에는 길을 걷다 보도블록 타일사이에 낀 이끼들을 떠 와서 길러보기도 했다.
제주에서도 고사리와 마찬가지로 어디에나 살고 있는 이끼들을 보느라 눈이 즐거웠다.
난 이 작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좋다.




블루스타펀 고사리 화분에서 새순이 동글게 잎을 감아올리며 올라올 때 사방의 흙을 조금씩 파내었다.
살짝 파진 구덩이에 포자가 달린 이끼들을 뿌리째 조금씩 나누어서 심었다.
매일 흙과 이끼를 살짝 적셔주고 포자가 터지면 화분이 초록의 이끼로 가득 찰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고사리와 이끼의 조합이 기대된다.
생각해 보니 제주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로 시작된다.
고등어회, 고사리, 곶자왈... 좀 억지인가?




심을 때는 몰랐는데 심고 시간이 지나니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보였다.
가끔 흙이 조금씩 위로 들어 올려진 느낌이었는데 아마도 고사리 포트 흙속에 달팽이가 살고 있었나 보다.
분갈이 후에도 가끔씩 나와 산책을 했다.
너무 작아서 이끼숲에 살고 있는 달팽이처럼 보였다.
고사리는 새순을 올리고 있고 이끼도 포자를 터트리려 한다.
달팽이도 생명력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게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잘 살아라 고사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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