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청춘인가?
내가 보는 기준이 다르고 주위에서 나를 보는 기준이 다르다.
나름 나이에 맞지 않게 동안이고 한 겨울에도 반팔을 입고 다니는 건강한 몸이라 주위에서는 내 나이를 10살 이상 차이 나게 본다.
그리고 아직 결혼도 안했고 자유로운 몸이어서 청춘이라고 보시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의 답은 청춘이 아니다 이다.
조금 삐긋해도 몸이 아프고 예전처럼 유연하지 않으며 무릎과 손목이 아파온다.
흰머리도 꽤 많이 보인다.
얼굴에도 조금씩 주름이 보이는 것 같다.
피부는 탱탱함이 사라졌고 눈도 약간 풀린듯하다.
육체적인 부분만 아니라 내적인 면에서도 푸르른 청춘은 지나갔다.
더 이상 새로운 생각과 시각은 생기지 않았고 어른의 기준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마흔이 넘어서 젊은이의 젊음과 행동들을 부러워했고 더 이상 난 청춘이 아니구나라고 단정 지었다.
내게 남은 건 인생의 저물어 가는 해를 끝까지 지켜보는 것뿐이었고, 남들처럼 가끔 생기는 소소한 삶의 이벤트들을 기대하는 작은 꿈을 가지고 살았다.
욕심은 가지지 않았다.
난 더 이상 젊어질 수 없고 한번 늙어버린 마음과 정신은 쉽게 허리를 펼 수 없다.
욕심이라고 해봐야 난 항상 글을 써야지라고 꿈을 꾸며 모아 오던 비싼 키보드들 뿐이다.
지금은 그 키보드들이 박스에 그대로 있고 난 이 글을 스마트폰으로 쓰고 있다.
무엇이든 빠르게 실행할 수 있는 도구가 가장 많은 쓰임을 받고 선택되나 보다.
일터에서도 그렇다. 가장 자주 움직이는 사람이 관리자에게 선택당한다.
그래서 내가 살면서 남들보다 직장의 도구로 많이 쓰였나 보다.
이런...
점점 따분한 나이 든 사람이 되어가던 내가 욕심을 부리게 된 건 그와 함께 간 제주도 때문이다.
제주에선 나의 어리고 젊은 시절처럼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다.
지나가던 바람이 나를 만져주었고 흔들리는 나무들이 가지를 들어 잎을 흔들어 주었다.
안녕. 반가워. 환영해. 오랫동안 기다려왔어.
내 마음속에 뜨거움이 일어났다.
이젠 더 이상 새로운 꿈을 넣지 않아 장작이 다 타버린 잿더미 속 작은 불씨에 제주의 바람이 숨을 불어넣었고 불꽃은 다시 살아났다.
가슴이 따뜻해지자 차가웠던 마음에 푸르른 봄이 돌아왔다.
너무나 벅찼고 기뻤다.
첫날 만장굴을 가면서 엄청난 폭우를 맞았음에도 난 웃고 있었다.
제주가 날 진짜 웃게 만들었다.
항상 만물이 푸른 봄철 같은 제주.
나의 제주는 청춘이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때 그 시절이 내게 왔다.
많은 걸 꿈꾸고 가능하다 믿은 시절.
작은 것에도 감정이 카멜레온 같던 시절.
달리고 달려 지쳐 나이를 먹어 느리게 걷다 하늘을 날아 발 닿은 곳이 제주였다.
아주 정직한 물리적 이동이었지만 난 시공간을 초월한 것처럼 젊어졌다.
김포공항과 제주공항은 내 청춘으로 돌아가는 타임홀이 있는 장소였다.
서른이 넘어 내 감정은 검정이었다.
볕이 들지 못해 아주 어두웠고 갈수록 검어졌다.
하얀 점 몇 개만 찍으면 칠흑 같은 우주였다.
그 공간에 푸른 초록의 물결이 일어났다.
지구 말고도 내가 살 수 있는 푸른 행성이 발견된 것이다.
나의 행성 제주. 어쩌면 제주별은 내게 항상 신호를 보냈을지도 모른다.
공간 속에 떠도는 너무 많은 생각의 인공위성들이 신호를 막은 거였을까?
너무 늦지 않게 찾아서 다행이다.
블로그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점점 생각들이 젊어짐을 느낀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발을 먼저 담가보는 것이 어렵지 않은 느낌이다.
점점 더 많은 걸 시도해 보려 한다.
나의 제주는 청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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