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을까?

낮가림 2022. 2. 12.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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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다고 믿니?"
그가 톡으로 물어본다.
머릿속에 사라지지 않고 계속 떠오르는 그 말.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다고 난 믿고 있는 걸까?
행복해지고 싶어서 제주에 가려하는 걸까?
서울에서의 행복과 제주에서의 행복은 차이가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일까?
행복하고 안하고의 기준이 무엇인가?
딱히 정답이 있는 질문이 아니기에 천천히 풀어가 보려 한다.
다만 지금이라고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나의 밥벌이에 만족하고 일상 속 소소함을 기반으로 작은 행복들이 하루를 조금씩 채워간다.
하지만 짜증이 날 때도 있고 여유가 없어서 시간에 쫓기듯 사는 날도 많다.
행복은 샌드위치처럼 짜증과 무관심, 우울, 평범 그 사이에 겹겹이 채워져 있는 것이다.
모든 감정들이 맛이 다 다르고 나도 모르게 행복을 베어 물었을 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낯선 곳에서의 모든 시간이 행복했다.
정말로 그랬다.
단순히 휴가였고 여행지라서 느낀 이상한 감정일까?
아니면 정말 특별한 거 하나 없는데 제주에서의 일상과 시간의 흐름들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을까?
많은 이들이 제주로 갔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간다.
난 단순히 그들과 바통터치를 하러 가는 걸까.
아니 그래서 난 먹고 살 것을 만들어서 가려하는 건데.
나라고 다를까? 다시 한번 내 마음이 나를 의심한다.
살면서 지금까지 수없이 들었던 마음속의 의심.
난 나를 믿어주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밀어붙였던걸 생각해 본다.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 지금 생각난다.
포기하면 행복하다는 말.
포기하지 않았다면 많은 고통과 인내, 외로움, 의심과 싸워야 했을 것이다.
엄청난 장기전이다.
빨리 포기했기에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내 일상은 똑같이 흘러갔다.
똑같은 일상은 똑같은 구간에서 기계적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낸다.
아주 먼지 같은 행복.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하려고 새벽에 알람을 15분 단위로 맞춘다.
정해진 지하철 도착 시간에 맞추려 발걸음이 빨라지고 겨우 가까스로 탑승한 후 가쁜 숨을 내쉬며 행복해한다.
직장에서도 큰 사고가 없었기에 행복해한다.
퇴근해서 맛있는 저녁을 먹을 기대감에 행복해한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정해진 타이밍에 나는 행복해한다.

나는 서울에서의 삶이 여유롭진 않지만 행복하다고 글을 쓰면서 믿고 있었다.
인생이란 여러 가지 맛이 있고 행복은 그중 하나라서 아껴먹는 단맛의 캔디처럼 매번 힘든 시간이 지나면 하나씩 까서 먹는 거야.
난 나를 속이고 있었나 보다.
내 일상을 지켜주는 직장과 월급이 행복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단순히 돈의 문제였던가.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은 건 아직 만족할 만큼의 돈이 없어서라는 말이 찾아온다.
왜 난 매번 포기했을까?
내가 행복하다고 느꼈던 감정은 단순히 만족이었다.
그래 늦지 않았으니 다행이야.
큰일은 없었으니 다행이지.
음 오늘 저녁은 만족스럽네.

앞에 쓴 글은 모두 개소리다.
내가 오해하고 있었다.
만족은 행복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내 삶은 행복하지 않다.
하루 중에 단 몇 시간만 행복이라고 오해한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
하루 중 시간별로 분단위 아니 초단위로 행복해지고 싶다.
너무 행복해서 바닥에 떨어진 사소한 행복 따위 발로 차 버리고 여유 있게 걷고 싶다.
경제적 풍요로움으로 가성비의 행복이 아닌 최대한의 행복을 누려보고 싶다.
이제 보니 내가 포기했던 건 행복이었다.
포기해서 행복했다고 오해한 건 그래 여기까지 왔으면 할 만큼 했어라는 만족감이 내어준 거짓 보상인 작은 캔디였다.
헛살았다. 살아온 척이다.
너보다 아프고 가난하고 외롭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
그 사람들은 작은 거에도 행복해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이 무엇인지는 이젠 모르겠지만, 그래 나도 그게 행복인 줄 알았어.
그냥 자기만족이었어.
그물 안에 갇혀서 주는 먹이만 먹고 숨만 쉬는 느낌이야.
만족과 진짜 행복은 비교할 수가 없어.
왜냐면 난 진짜 행복은 느껴본 적이 없는 거 같아.
행복이라는 감정이 뭐지?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지 말고 지금부터 행복하자는 말.
행복을 나중으로 미룰 능력도 안되고 애초에 행복이 어떤 감정인지 모르겠어요.

갑자기 일상이 뒤통수를 친다.
일찍 일어나려면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자라고.
따뜻한 방바닥에 앉아 그런 생각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어서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평범한 것이 행복이라고...
내가 무언가 알아버린 걸까?
나를 잠들게 하고 강제로 리부팅하려는 걸까?
내일 아침 일어나면 평소처럼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을 하게 될까?
오늘도 수고했어.
커피 한잔 마시면서 한숨 한번 쉬는 게 중년의 인생이지.
나는 언젠가는 제주에 갈 거야.
꿈이 있는 인생은 이미 행복한 거야.
주식이 올랐네. 코인도 오르는데.
그래 조금만 더 올라라.
더 모이면 무언가 해봐야지.
난 내 시간을 잘 쓰고 있어.
...
이제 조금 있으면 40대 후반이구나.

진실이 보인다.
내 안의 나는 리스크를 최대한 줄인 채 안전한 삶을 설계하고 가상의 미래를 보여준다.
거기에 행복도 제주도 없다.
그저 삶에 만족한 중년의 아저씨가 있을 뿐이다.
시간과 주름을 맞바꾼 나는 노년을 향해 나아가며 노년의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다시 은퇴 후 슬프게도 노년의 터전으로 잊고 살았던 제주를 택한다.
어느 날 같이 늙어 가던 그가 제주에 가고 싶다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제주에 가면 행복이 있다고 믿니?"
나는 이미 연식이 오래된 뇌를 굴리며 떠올린다.
어디서 많이 들은 말 같은데...
"행복이라니 무슨 말이야? 이 정도면 만족한 삶이지."
난 주머니에서 캔디 하나를 꺼내 입안에 넣는다.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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