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아침에주스 제주당근, 당근주스 이야기

낮가림 2023. 8. 7.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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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자연에서 자란 신선한 당근을 한 병에 담다.




아침에주스 · JEJU EDITION ·



동네 인헌시장 안쪽에 있는 원마트에서 구입한 아침에주스 제주당근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사실 사다 먹은 지는 꽤 되었는데 몇 개월간 블로그를 하지 않아서 나름 하고 싶은 말들이 많이 쌓여있다.

얼마 전까지 당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렸을 적 자주 먹던 채소중 하나였지만 나이가 들어서는 먹을 일도 눈으로 보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유년시절 성장기에는 먹을 게 없어서 당근, 고구마, 무를 생으로 씹어먹었다.
당근의 소소한 단맛이 나름 입맛을 돋워주었고, 소풍을 갈 때면 늘 김밥에 단골로 들어가는 야채였다.
나이를 먹어서는 김밥을 먹게 될 일이 거의 없었고, 어머니가 잡채를 만드시는 경우에만 간혹 기름에 볶은 당근을 먹을 수가 있었다.
당근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당근과 멀어지게 된 것이다.



제주를 알게 되고 관심을 여기저기 두면서 당근은 나의 작은 화젯거리였다.
중고거래회사 당근마켓만 알던 내가 진짜 당근에 대해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나라 당근 생산량의 60% 이상이 제주에서 출하되고 특히나 구좌읍 당근이 유명하다고 들었다.
하지만 딱히 생당근만 주문하기에는 집에 먹을 사람이 별로 없어서 망설이던 나였다.
그럼 당근주스가 어떨까 하며 네이버에 검색했다.
맛도 괜찮고 건강에도 좋을 테니 주문해서 마셔보자라는 계획이었다.

역시나 구좌읍 당근이 가장 유명하다 보니 나열된 제품들이 모두 공통적으로 '청정 100% 제주 구좌 당근 착즙주스'라는 키워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검색창 키워드만 보아도 구좌가 당근의 고장이라는 사실이 느껴졌다.
이제 그중 맘에 드는 제품을 클릭했는데 비가열 착즙 및 살균하였기 때문에 반드시 냉동실에 보관해야 한다는 문구가 보였다.
냉동실에 보관해야 한다고?
집에서 사용 중인 냉장고의 냉동실을 떠올렸다.
어머니가 사다 놓으신 각종 먹을거리와 아이스크림, 비닐봉지에 쌓여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
비좁은 사이사이에 주문한 당근주스를 끼어 넣어야 한다.
당근주스를 냉동실에 집어넣고 있는 나를 보며 어머니가 분명 한 마디가 아니라 매일 잔소리를 하실게 뻔히 그려졌다.



가장 눈에 확 들어왔던 제품을 포기하고 다른 제품을 클릭해 들어가 본다.
마찬가지다.
모든 당근주스들이 첨가제가 들어가지 않아서 반드시 냉동실에 보관해야만 했다.
냉장실에 넣더라도 1~2일 안에 소화를 해야 하는데 당근주스 한 박스를 그런 식으로 먹게 되면 나는 분명히 당근을 싫어하게 될 거고, 앞으로도 살면서 영영 제주 당근주스에 불호를 가지게 될게 뻔했다.
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제주 당근주스에 대한 기대감을 내려놓았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들른 마트 음료코너에서 주황색의 뽀얀 주스병을 보고 마음속으로 '당근이다'라고 외쳤다.
아무리 봐도 당근색이었다.
가까이서 보니 무려 제주산 당근 함량이 99.7%였다.
가공식품 음료였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심정이었다.
이거라도 마셔보자는 번뜩임과 함께 무려 제주 에디션(JEJU EDITION) 글자가 확 들어왔다.
워낙 제주에 관심 많은 육지인이라 제주 지명이 라벨에 붙어있으면 근거 없는 신뢰를 가지게 된다.
Jeju Carrot이라고 적힌 제주당근 영어도 괜히 이뻐 보인다.
제주도의 자연에서 자란 신선한 당근을 한 병에 담다.
이 문구에 꽂힌 나는 바로 아침에주스 제주당근을 집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흰 뚜껑 위에 서울우유가 각인되어 있었다.
전체적인 투명한 병의 모양은 깔끔했고, 하얀색 뚜껑에 새겨진 서울우유와 아침에주스 로고가 단아했다.
진정한 나의 관심은 투명한 플라스틱 너머의 주홍빛 음료에 꽂혀있었다.
부엌에서 두리번거리며 머그컵을 꺼내왔다.
바로 아침에주스 뚜껑에 살짝 힘을 주어 열었다.
아침에주스 병을 들어 비어있는 머그컵 입구에 기울이니 개봉된 병입구에서 당근주스가 작은 시냇물처럼 졸졸 흘러나온다.
머그컵에 무사히 안착한 당근빛 당근주스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약간의 차이로 당근향이 코끝으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맡는 당근향이 반갑고 건강한 기분이 들게 했다.
눈과 코로 보고 맡아봤으니 입으로 마실차례다.
다시 머그컵을 기울여 식욕에 발만 살짝 담근 입안으로 당근주스를 흘려보낸다.



오~ 당근맛이다.
더 이상 무슨 맛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아주 달지 않은 적절한 당근맛이었다.
더불어 건강하다는 기분까지 혀에 달라붙은 느낌이었다.
실제 무첨가 제주당근 100%, 당근주스를 먹어보지 못했으니 감히 비교하며 평가를 할 수가 없다.
그냥 맛있는 당근주스다.
온라인 검색으로 좀 더 찾아보니 국산사과가 조금 첨가돼서 혼합되었다고 한다.
내가 미식가도 아니고 정말 오랫동안 잊고 살던 당근맛을 혀에게 다시 찾아준 에피소드라고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울러 당근의 고장 제주 구좌읍에 가게 되면 진짜 생 당근주스를 먹어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몇 개월 후에 실제로 우연히 잡은 숙소가 구좌읍 당근밭이었다.
네이버 지도에서 숙소 찾기를 한 후 맘에 드는 숙소를 찾았고, 그 숙소는 스테이 빌레(STAY HVILE)다.
독채숙소의 실내도 맘에 들었지만 통창으로 보이는 당근밭 뷰가 내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나중에 다시 한번 리뷰를 하겠지만 나무데크로 나와 바라보는 오픈된 당근밭 풍경은 정말 시원했다.
택시를 타고 와서 잘 몰랐지만 후에 숙소를 나와 그 주변을 둘러보니 모두 당근밭이었다.
눈에 보이는 당근밭 모두 검고 짙은 흙만 보였고 당근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휴가가 끝난 후에야 찾아보니 당근은 겨울의 추위에도 강해서, 11월쯤에 농사가 시작되고 5월까지 수확을 한다는 정보였다.
친구와 내가 휴가를 간 시점이 딱 7월 끄트머리였으니 농사기간이 끝나고 땅이 휴식을 하던 때였다.
지금 와서 돌아보니 한창 성수기인 휴가철에 놀러 온 관광객이 프라이빗을 중요시하는 독채숙소에서, 매일 열심히 농사하시는 제주 어르신들과 눈을 마주치는 광경도 이상하고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도중에 들른 세화 해안도로 카페 오스모시스(OSMOSIS)에서 음료메뉴판을 보던 중 당근주스를 발견했다.
당근주스 밑에
직접 재배한 당근으로 주문 즉시 착즙~!이라는 설명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당근 생산철이 아니기에 주문 가능한 음료가 아니었다.
아주 반가웠지만 아쉽기도 한 순간이었다.
결론은 제주 구좌읍에서 실제 당근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당근주스를 마시지도 못했다.
동네를 어슬렁 거리던 중 당근과 관련된 표식이나 설치물 등을 발견했고 씁쓸한 마음을 대신했을 뿐이다.
퇴사하면 제주 당근주스를 마실 수 있겠지?



현재 아침에주스 병은 어머니가 물병으로 사용 중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