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에서는 아침을 먹자

낮가림 2022. 2. 25. 07:19
반응형

 



난 예전부터 아침에는 항상 바빴던 것 같다.
항상 정해진 시간보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일찍 출근했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그 시간을 즐겼다.
하지만 빠른 출근 때문에 아침을 항상 굶어야만 했다.
약 10년이 넘는 날 동안 아침을 먹은 날이 다 합쳐서 1달이 될까 말까 한다.
그래서 지금은 아침을 먹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웃기게도 빠른 출근으로 아침식사와 바꾼 것이 커피였다.
엊그제 까지도 아침 시간동안 많으면 약 5잔 이상의 커피를 마신다.
커피가 맛있어서? 추워서? 배고파서?
나도 모르겠다.
매일 습관적으로 커피를 입에 넣게 되었다.


난 제주에서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하늘을 보며 깨어날 것이다.
음악을 틀고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적당한 양의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요리를 만든다.
그래 난 파스타를 좋아하니까 파스타로 하자.
커피포트에 미리 물을 담아 끓여 둔다.
일하는 시간은 스스로 정할 수 있으니 더 이상 시간에 쫓겨 집에서 도망가지 않아도 된다.
집안에는 향긋한 음식 냄새가 퍼진다.
살짝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킨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라 차가운 공기가 밀려들어와 따뜻한 요리를 살짝 덮는다.
밤새 자느라 살짝 체온이 내려간 피부에 찬 공기가 닿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온도의 변화를 느끼는 것은 살아있다는 기분이다.
이쁜 접시에 아직 뜨거운 파스타를 담는다.
파스타의 온기와 향이 접시에 스며들었다.
살짝 큰 식탁에 파스타와 직접 담근 피클을 조금 내어 올려둔다.
따뜻한 원두커피도 커피잔에 담아서 파스타 옆에 놓는다.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포크하나.
이제 아침식사 준비가 끝났다.

열린 창문 틈으로 여전히 찬 공기가 들어오고 있다.
하늘의 색깔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포크로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 입안으로 넣는다.
혀 끝이 면을 돌돌감아 목구멍으로 밀어 넣는다.
아침이다. 따뜻한 아침의 기운을 먹고 있다.
몰랐다. 아침 한 그릇이 이리도 소중한지.
아침을 비우니 온기를 잃고 향만 배인 접시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아직 식지 않은 살짝 시고 쓴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이제 해가 떠오르나 보다.
난 창문을 닫아 찬 공기를 막고 커피잔을 든 채로 밖으로 나간다.

아침의 여유.
아침이라는 시간대를 온전히 즐기는 기쁨.
찬 공기가 나와 커피잔의 온기를 빼앗으려 한다.
떠오르는 해가 저 멀리서 광선을 쏜다.
마당 앞에 길게 빛이 내려앉는다.
어두웠던 풀들에 푸릇푸릇한 생기가 입혀진다.
난 몇 걸음 걸어가 그 빛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따뜻하고 눈부시다.
눈을 감고 입을 벌려 빛을 먹는다.
목구멍이 따뜻하다.
아침이다. 따뜻한 아침의 기운을 먹고 있다.
몰랐다. 아침 한 그릇이 이리도 소중한지.

'내 활주로는 제주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는 내가 지난 여름 제주에서 한 일을 알고 있다.  (4) 2022.03.03
제주  (2) 2022.03.01
제주 걱정  (8) 2022.02.23
메타버스 제주  (10) 2022.02.20
내가 제주로 가는 건 비밀이다  (10) 2022.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