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불편한 다리로 의자를 향해 힘겹게 걸어갔다.
삶의 목표가 의자를 향해 있었다.
온몸의 무게를 떨어뜨리듯이 의자 위에 쿵하고 앉아버렸다.
의자가 흔들렸고 나무바닥도 찌그덕거리는 소음이 났다.
노인의 살결은 탄력을 잃었고 눈도 나빠져 잘 보이지 않는다.
오래된 나무의자도 많은 상처가 났고 다리 끝부분이 닳아서 약간 기울어져 있었다.
노인과 의자 모두 오래된 존재였다.
너무 오랫동안 사용해서 이젠 둘이 서로 한몸처럼 편안해 보였다.
멀리서 보면 다리 6개 달린 신화 속의 켄타우르스처럼 보였다.
노인은 저물어가는 해를 바라봤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노을이 지는 모습은 똑같다.
하늘 아래의 풍경들이 바뀌었을 뿐이다.
젊었을 적 많은 꿈들이 있었지만 이루지 못하였고 지금은 시골로 내려와 홀로 살아가고 있다.
과거를 회상해봤자 모두 끔찍히 힘들었으며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때 그랬다면 하는 아쉬움만이 쌓이고 쌓일뿐이다.
알고있다.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잘못잡으면 지금처럼 외롭고 힘들게 살게 된다는 것을.
삶에 수많은 기회가 오고 손을 내밀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로 감추고 살면 잡을 수 없음을.
후회는 후회를 부르고 정신에 깃들며 사람을 만들어 간다.
노인의 머릿 속엔 그보다 어리지만 많은 존재들이 살고있다.
삶의 수많은 시간을 생각을 하며 보내는데 노인이 먹여주고 키운건 걱정과 후회와 몇가지 부정적인 감정이었다.
이미 걱정과 후회는 노인의 나이 중에 많은 시간을 먹어치우고 각각 10살이상 훌쩍 자라나 있었다.
이제는 알아서 돌보지 않아도 반항기 많은 아이처럼 노인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로이 차지했고 정신이 지칠때까지 그대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불안한 미래와 망쳐버린 과거를 말이다.
노인은 지쳐버린채로 의자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방바닥이었다.
낯설지만 낯설지않은.
이상하다.
꿈인가?
이불을 걷고 일어나본다.
너무나 편하게 몸이 일으켜진다.
내 몸이 아닌데 내 몸같다.
익숙한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을 본다.
주름이 없는 40대의 자신의 모습이다.
순간 의심이 든다.
이것은 꿈속에서 후회가 보여주는 모습이리라.
난 내가 40대에 후회 한 일들을 아주 잘 알고있다.
매일매일 돌려봤으니까.
근데 너무 현실같다.
달력으로 날짜를 확인한다.
40년 전이다.
생각을 더듬어 이때 어떤 직장에 다녔고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하려 애썼다.
생각났다.
그리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후회와 걱정이 함께 몰려왔다.
다행히 오늘은 일요일이다.
내일은 출근해야한다.
꿈에서 깨지 않는다면.
베게 옆에 충전중이던 스마트폰을 들어본다.
암호는 항상 똑같았다.
시간 타이머 앱을 켰다.
타이머를 키고 시간이 흐르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리고 깨달았다.
너무나 정직한 현실세계라는 것을.
노인은 젊은 육체에 깃든 자신의 현실이 이제서야 믿어지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이지만 모든 사물들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만져진다.
노인은 알고 있다.
생생히 생각난다.
후회를 부르면 어제 있었던 일이 무엇인지, 걱정을 부르면 내일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노인은 지금 후회의 시간인 젊은 날을 살고 있다.
동시에 걱정으로 살아갈 젊은 날이다.
이제 인생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않으면 미래의 자신으로 돌아갈 것이다.
노인은 기회가 다가올 때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로 다짐했다.
후회한 세월이었고 어제까지는 모두 아는 일들이니 더이상 꺼내보지 않기로 했다.
내일부터도 모두 경험한 일들이었고 걱정이 무의미 했다.
더 이상 그들에게 자신의 수명을 나눠주지 않기로 했다.
대신 구석에 쳐박힌채로 아직 두발로 걷지도 못하는 잊혀진 꿈들을 불러모았다.
노인은 그들에게 자신의 남은 수명을 나눠주기로 약속했다.
기대와 행복과 감사 그리고 사랑.
작은 소망들.
오늘 오전에 친구와 톡으로 대화를 했다.
80세를 넘은 내가 젊은 나의 몸으로 돌아가 살 수 있다면.
늙은 나에겐 망가진 과거를 바꿀 수 있다.
젊은 나에겐 망가질 미래를 바꿀 수 있다.
40대에 인생을 다시 바꿀 기회가 온것이다.
살고 싶은대로 지혜롭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온것이다.
그는 이미 이 방법을 쓰고 있다고 했다.
미래의 노인이 된 내가 지금 내몸에 깃든다면 얼마나 행복할 것인가.
과거의 나의 행적대로 살면 미래의 내 모습이 뻔히 보여진다.
자꾸 후회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이미 익숙한 나쁜 경험들이 미래에 올 것을 알기에 걱정하는 것이다.
조금씩 방향을 바꾸자.
조금만 바꿔도 우리 인생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다.
걱정따위는 비교도 안 될 기대가 몰려오는 것이다.
난 행복한 제주생활을 할 것이다.
그 꿈을 향해 오늘도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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