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습관처럼 작은 무선청소기를 들고 청소를 시작한다.
방바닥엔 나의 파편들이 있다.
너무 길어져버린 나의 머리카락과 몸에서 떨어져 나온 고생이 있다.
하나하나 남김없이 빨아들인다.
청소기의 소음이 귀를 따갑게 한다.
빗자루 보다 편하지만 기술의 소음을 얻었다.
몇번 왔다갔다하니 깨끗하다.
이제 이불을 깔고 누울 수 있다.
누우려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하나가 보이면 손가락으로 콕 집어 화장실까지 이동한다.
그리고 추락시키기.
내 눈에 보이는 방바닥보다 내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먼지가 더 많다.
수많은 생각의 파편들.
항상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난 금방 딴생각에 홀리고 만다.
나를 홀린 생각에서 빠져나와 다시 어떻게 제주에서 살것인가에 집중한다.
완성되지 않은 딴생각은 다시 이어지지 못하고 그대로 잊혀지고 낡아진다.
모두 조금씩 해체되고 부서져 작은 먼지로 내 머릿속을 떠다닌다.
내가 가진 모든 긍정과 부정.
걱정과 후회.
슬픈과 기쁨의 감정들.
모든 것들이 먼지가 되어 내 머릿속 시야를 뿌옇게 만든다.
어지럽고 정신없다.
내가 봐야할 것들이 보이지 않는다.
물리적으로 생각의 먼지들을 빨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일주일에 한번은 머리를 깨끗히 비워야한다.
내 외적 환경이 정리되어 있듯이 내적 환경도 정리되어야 한다.
머리에 대고 청소기를 돌린다.
위잉.
머리카락이 흡입구에 빨려 들어간다.
동시에 생각의 먼지들도 같이 빨려 들어간다.
청소기를 끄고 본체를 돌린다.
필터망을 분리하고 안에 잡아둔 먼지들을 확인한다.
물리적 먼지와 생각의 먼지들이 뒤섞여있다.
버리기 위해 화장실에서 탈탈 털어둔다.
먼지속에서 제주가 떨어진다.
왜 제주가 섞여있지?
나는 의아했다.
하지만 당연한 결과다.
제주에 대해 계획해놓고 아직 실행하지 못한 것들이 많다.
작은 계획들이 찾아보고 알아주지 않자 먼지처럼 부서진것이다.
난 그 먼지를 들어 머리 위에 올려놓았다.
다시 기억하도록.
나머지 먼지들은 탈탈 털어모으고 한뭉치로 합쳐버렸다.
생각들이 하나로 모인것이다.
의도하지 않은 생각의 먼지공이었다.
오늘 하루 잡생각들이 여기 다 모여있는 것이다.
모아보니 아주 작은 솜뭉치 같다.
이렇게 눈으로 보니 걱정도 아쉬움도 잡생각도 그리 크지않다.
그냥 귀엽다.
귀여워.
먼지뭉치를 들어서 변기로 가져간다.
그리고 추락시키기.
잡생각들아 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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