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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쩌다 보니 인생이 이렇게 풀렸다.
이 일을 계속할지는 모르겠지만 현재는 본업이고 노동으로 얻는 유일한 수입원이다.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된 걸까?
시작은 아주 사소했다.
내가 백수였던 어느 날 그가 내게 재밌는 게임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게임의 이름은 듀랑고.
공룡들이 존재하는 가상의 세상에서 농사를 짓고 사냥도 하며 건축을 하는 게임이었다.
돈을 모아서 자신의 땅을 더 확장시킬 수 있었고 나는 땅에다 옥수수, 벼 등 농작물을 가득 심었다.
게임이었지만 농작물을 기르고 추수하는 재미에 푹 빠졌고 그야말로 농사꾼이 되었다.
건축과 공룡 사냥, 정글탐험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직 농사뿐이었고 탐험을 하는 이유도 퀘스트를 깨서 레벨업을 하거나 새로운 농작물 종자를 찾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세계에 푹 빠져들었고 낮이나 밤이나 농사를 지었다.
농경지를 넓혀가며 잘 자란 수확물을 볼 때마다 뿌듯했다.
후에 이 게임을 배경으로 한 공중파 예능 듀니아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되었지만 이미 게임 제작사의 운영은 한계에 다다랐고 듀랑고의 세계는 그렇게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됐다.
가상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농사를 지었던 영향이었을까.
현실에서 아스팔트에 올라온 작고 푸른 풀떼기만 봐도 마음이 두근거렸다.
왠지 소중하게 보살펴야 할 것만 같았다.
자연과 식물에 대한 애정은 게임 속 세상을 넘어서 현실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갑자기 농사를 지을 수는 없었다.
웃기게도 세상은 생각하는 것을 던져다 주는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찾던 중에 인터넷으로 식물을 파는 하우스에서 일하게 됐고 그 인연으로 다른 곳에서 여전히 식물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기에 꽤나 만족하며 일을 하는 중이다.
그는 내게 듀랑고를 알려주었고 식물과 자연에 눈뜨게 했다.
그는 내게 고등어회를 알려주었고 제주도에 발을 닿게 했다.
그는 어쩌면 내 인생의 NPC 같은 존재다.
더 높은 레벨과 깊은 탐험을 위해 항상 미션을 숨기고 있다.
다음 미션은 모르지만 이번 퀘스트는 잘 알고 있다.
바로 제주로 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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