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는 나의 구멍을 메꿔줄 것이다

낮가림 2022. 4. 1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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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빗소리가 들렸다.
자다 깨어 냉수 한 잔으로 목마름을 채우고, 잠시 귀 기울이다 기분 좋은 감정으로 다시 잠이 들었다.
몇 시간 후 우산을 쓰며 출근길을 나섰고 비가 고인 길 위를 걸어야 했다.
일터에 도착했을 때는 양말과 신발이 모두 젖어있었다.
양말 뒤꿈치에는 작은 구멍이 나있었다.
젖은 신발도 밑창에 구멍이 나서 많이 축축했다.
다행히 예비용 신발이 있어서 갈아신었다.
기분 나쁜 축축함이 사라졌다




나는 사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양말에 구멍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기에 다른 양말을 찾을 여유 없이 그대로 신고 나왔다.
그리고 신발 밑창에 구멍이 났다는 것도 오래전에 알고 있었다.
자다 깬 새벽 두발과 맞닿는 지면이 물에 젖어있음을 짧은 순간이나마 인지했다.
그럼에도 나는 구멍 난 양말을 신고 구멍 난 신발을 신은채 비 오는 길을 걸어갔다.
신기하게도 세상의 모든 것들은 구멍을 잘도 찾는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빗물들이 구멍 난 밑창과 구멍 난 양말 뒤꿈치 사이로 젖어 들어왔다.

왜 난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나온 걸까.
잘못된 삶의 습관들이 내 인생에 구멍을 내버렸다.
그 구멍들은 갈수록 커져갔고 메꾸기도 쉽지 않았다.
난 느꼈다.
저 구멍들을 그대로 두면 내 삶은 망가질 거라고.
제주로 가기 전에 삶의 잘못된 부분들을 모두 고쳐야 했다.
새사람은 아니어도 구멍 난 사고를 가진 채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우유부단함으로 고생하기는 싫다.
구멍 난 양말 한 짝은 버려야 한다.
구멍 난 신발도 버려야 한다.
40년 넘게 살아오며 몸에 밴 구멍 난 습관도 모두 버려야 한다.

난 제주에 가면 깨끗한 신발을 신은 채 숲과 오름을 거닐 것이다.
신발 바닥에 제주의 흙과 모래, 비를 묻히며 살아갈 것이다.
구멍이 날 때까지 신었다가 그 신발에 작은 풀 한 포기를 심어야지.
비가 내리면 밑창 구멍으로 자연스럽게 물은 빠질 것이다.
그때를 위해 새 양말, 새 신발을 준비해야겠다.
기억난다.
지난여름엔 야자수가 가득한 컨버스 신발을 신고 제주에 갔었다.
그리고 그때 신은 양말의 이름은 오름이었다.




하루가 피곤했는지 글을 쓰다가  몇 번이나 꾸벅 졸았다.
방금도 졸아서 눈 감은 채로 무언가를 눌러버렸다.
체력에 구멍이 난 모양이다.
어서 포스팅을 마무리하고 잠으로 구멍을 메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