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제주 타이머

낮가림 2022. 4. 15.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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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로 이주해 살게 된다면 서울의 집에서 가져가야 할 나의 물건들이 있다.
그것이 단순히 짐이라면 다 서울에서 정리해서 버리고 가겠지만 손으로 항상 만지고 눈으로 확인하는 물건들이다.
제주집(제주집이라고 말하니 설렌다)에서 살게 되면 최소한의 물건과 인테리어를 한 채로 비워진 공간에 음악을 크게 틀고 싶은 욕망이 있다.
그래서 몇 장 안되지만 그동안 모아놓은 LP판들을 가지고 갈 생각이다.
정작 현재는 LP판을 재생시킬 수 있는 턴테이블이 없다.
그런 상황이라 한 번도 재생을 못했다.
아쉽지만 제주집에서는 꼭 음악이 담긴 LP판을 플레이시키고 싶다.
턴테이블도 맘에 드는 것으로 사야지.
그 외에도 꽤나 모아둔 음악 CD들과 몇 권의 책들, 작은 소품과 옷가지 정도.




소품 중에 하나가 타이머다.
예전에 한창 구글에서 사용한다는 구글 타이머가 인기를 끈적이 있었다
나도 시간관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었고 구글 타이머를 구매하려 검색을 했었다.
수입품이었는데 별거 없는 허접함과 아날로그적 매력뿐인 타이머가 너무 비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었다.
물론 시간관리 측면에서 제대로 사용한다면 돈값 이상으로 나에게 혜택을 주겠지만 못생긴 물건을 못 참는 나는 차마 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기능을 가져도 자주 쓰는 물건이 이쁘지 않으면 손이 안 가는 병이 있다.
처음부터 사지도 않는다.
고민 끝에 구매하지 않았고 시간이 쭉 흘러갔다.



스마트폰에 같은 기능을 가진 타이머 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구글 플레이에서 다운을 받아 사용했다.
타임 타이머(Time Timer)라는 앱이고 지금도 지우지 않고 필요할 때를 대비해 가지고 있다.
같은 기능과 앱이라는 편리함이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물리적인 느낌이 강한 아날로그의 매력이 없었다.
몇 번 사용하다가 잊혀버린 앱이다.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텐바이텐에서 아무 생각 없이 구경을 하다가 내가 사용하는 타이머를 발견하게 됐다.
원래는 요리할 때 쓰는 조리시간 타이머 같은 용도로 만들어진 제품이었나 보다.
애매한 마음에 구입했고 받아본 제품은 완전 매력적이었다.
오리지널 구글 타이머보다 작은 크기에 자석이 달려서 냉장고나 금속으로 된 가구의 일부에 착하고 붙여놓을 수 있는 편리함이 있다.
한 손으로 타이머를 잡은 채로 시계방향으로 돌리면 빨간색 투명판이 나오고 원하는 분량의 시간만큼 맞춰서 놓으면 그때부터 빨간 투명판이 시계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며 시간이 줄어든다
빨간 초침이 커다란 원형판으로 변형되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 타이머의 매력은 째깍째깍 초침 소리가 울리는 그야말로 완벽한 아날로그적 매력이라는 것이다.
온신경을 집중하게 해주는 긴박함이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고 마음이 다급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차분해지며 하고 있는 일에만 몰입하게 해 준다.
독서 루틴을 만드는 초기에 이 타이머로 퇴근 후 30분씩 설정해놓고 하루에 30분씩 책을 읽었다.
타이머가 움직이면 다른 곳에 일절 시간을 내지 않고 책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책을 읽게 되는 습관을 만들었다.
빨간 판이 줄어들고 시간이 다되면 시계 알람 소리인 따르릉 소리가 나는데 그러면 완전히 끝까지 돌려 소리를 끈다.
소리가 꽤나 커서 빨리 꺼야 한다.
지금 포스팅도 이 타이머를 켜놓고 작성하고 있다.
그냥 작성하는 글과 타이머를 의식한 채로 하는 작업은 속도와 집중면에서 차이가 난다.
어떻게든 글을 뽑아내게 해주는 시간의 후원자이다.

제주에 간다면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일하게 될 것이다.
내가 가장 일이 손에 붙는 시간을 찾아서 집중적으로 몰입하여 끝낼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의 노예가 되는 타이머를 왜 가져가는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신분이 된 나는 더욱더 내 시간을 소중히 아껴야 하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업 속도를 올리고 늘어난 자유만큼 줄어드는 시간을 의식하는 것이 최선의 조합이라 여긴다.
지구의 수호자 어벤져스라는 집단을 통제해야 한다고 아이언맨이 캡틴 아메리카에게 말했듯이 나에게도 내 시간을 정확히는 내 수명을 통제해야 할 카드가 필요하다.
아주 단순하고 작은 물건이지만 앞으로 내 삶을 조금씩 바꿔줄 소중한 아이템이다.
타이머야.
우리 제주 가서도 잘해보자.
제주에서의 내 시간을 아껴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