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술이 아닌 제주에 취했다.
첫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였다.
그와 나는 제주공항을 나와 첫 방문지로 동문시장을 선택했고 올레 횟집에서 첫 고등어회를 먹었다.
처음 느껴보는 회의 맛에 혀의 미각이 살아났다.
배부른 두 여행자는 횟집에서 나와 동문시장을 어슬렁거렸다.
우리에겐 숙소에서 먹을 간식거리가 필요했고 더 세분화하자면 나에겐 더욱더 제주스러운 무언가가 필요했다.
기념품 가게에 들러서 나 제주야 라고 외치는 제주스러운 귤, 당근, 동백꽃 등의 액세서리를 구경했다.
귀엽기는 했지만 사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고등어회처럼 낯설지만 익숙한 존재감이 필요했다.
그리고 멍하니 시장 골목길을 걸어가던 중에 매장 앞 가판대에 올려진 페트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https://blog.kakaocdn.net/dn/ddF9YK/btrAGf8E3Gw/yIc3dWDBffrclTQeNi9qqk/img.gif)
제주맥주.
분명 제주맥주라고 써져있었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고 무척이나 여행자와 어울리는 느낌의 이름이었다.
제주맥주라니...
커다란 페트병에 담긴 제주맥주와 병에 담긴 병맥주가 있었다.
매장의 매니저는 우리에게 제주맥주를 추천했고 무엇보다 제주스러운 이름에 난 반하고 말았다.
제주맥주라면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주저 없이 맥주를 골랐다.
여행기간 동안 마시지 않고 서울로 돌아간다면 무척이나 아쉬울 것 같았다.
마침 우리는 고등어회를 먹은 올레 횟집에서 모둠회와 연어회를 포장해 왔었고 그에 맞는 제주의 술이 필요했다.
우리는 제주펠롱에일 페트병과 제주 슬라이스 과일맥주 2병을 구매했다.
지금 영수증을 찾아보니 34,000원에 구매했다.
난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고등어회에 제주맥주라니.
만약 제주맥주를 못 봤다면 한라산 소주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이 날은 비가 많이 내리는 날이었고 우리는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숙소인 당당하우스에 들어가 냉장고에 회와 제주맥주를 보관한 채로 바로 나와 만장굴로 향했다.
비가 계속 내렸고 우리는 만장굴 탐험 후에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우리는 제주의 첫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조명 라이트하우스를 창가에 올려 촛불을 켰고, 구글 네스트 허브를 켜서 OK GOOGLE을 불러 숙소로 음악을 초대했다.
![](https://blog.kakaocdn.net/dn/bqIrij/btrAECcvv8a/ZghlcoMQ384VaGhIPHZD81/img.jpg)
포장해온 연어회와 모둠회를 세팅하고 시원한 제주맥주를 일렬로 세워놓으니 그럴듯한 상이 차려졌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자세한 맛은 생각이 안 나지만 제주 슬라이스 맥주는 예상한 대로 과일맥주였고 정통스러운 맥주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호불호가 갈리는 맛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술맛에 취하는 게 아니라 분위기에 취하는 것이다.
첫 제주도 여행의 시작이 너무나 만족스러웠고 오래도록 남은 고등어회의 고소한 맛.
비 오는 날의 제주와 아담한 목재 하우스의 분위기와 음악이 우리의 시간을 설레게 했다.
커다란 페트병의 제주펠롱에일을 마시면서 정말 오름만큼 배가 부른 것 같았다.
멋진 제주의 저녁식사야!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회와 맥주를 마시고 따뜻한 국물이 필요해서 만장굴 편의점에서 비를 뚫고 사온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첫 제주는 그렇게 흘러갔다.
서울로 올라와서 그와 나는 캠핑에 눈을 떴고 맥주를 고르던 중에 제주맥주를 발견했다.
서울에서도 파는 맥주라니.
살짝 당황했지만 그때의 추억으로 마시지 않은 맛의 맥주를 사서 먹었다.
얼마 전에도 봄 캠핑을 갔고 이마트에서 제주 거멍에일이라는 신제품을 사서 마셔봤다.
거멍은 검다라는 제주의 방언이고 그 의미를 살린 흑맥주다.
내가 좋아하는 쌉싸름한 맛이었고 다시 먹어보고 싶은 맛이었다.
아무튼 신제품이 계속 나오고 있으니 그때마다 사 먹어봐야겠다.
제주맥주는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맥주다.
상장된 제주맥주의 주식을 사본적은 없지만 제품은 꾸준히 먹어볼 생각이다.
제주맥주를 마시면 나의 감성이 더 제주스러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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