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검은머리로 제주에 간다

낮가림 2022. 5. 3.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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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고 하얀 것은 오래 살지 못한다.




가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지금이 그렇다.
몸은 피곤하고 졸음이 셔터를 내려서 눈앞을 깜깜하게 만든다.
이렇게 일하다 보면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분명 사람들의 수명을 카운터 하는 존재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가 나이를 먹는 것보다 빠르게 수명은 줄어들 것이다.
이 세상엔 수많은 과로사가 존재할 텐데 정말 덧없고 잔인한 삶이다.
돈을 위해 희생된 나의 노동력이 가끔 부끄러울 때도 있다.
정말 돈 때문에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해야 하나?




늦게 퇴근하고 집에 들어와 샤워를 하고 난 후 거울을 보니 흰머리카락이 많이 보인다.
족집게로 뽑아낸 지가 오래되지 않았는데 벌써 눈에 띄게 자라 있다.
할 수 없이 눈에 먼저 보인 흰머리카락을 뽑아버렸다.
녀석은 총대를 메고 대표로 뽑혀버린 것이다.
뽑힌 머리카락을 보니 애처롭다.
식물계에서 하얀 잎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햇빛에 광합성을 하는 초록잎과 달리 하얀 잎은 엽록소가 없기에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도태되거나 빨리 시들어버린다.
자연 속에 가끔 나타나는 하얀 피부나 털을 가진 알비노가 그렇다.
몸이 약하고 눈에 띄기에 다른 포식자들의 공격에 쉽게 사냥당한다.
내 흰머리카락이 그렇다.
다른 녀석들처럼 검었으면 눈에 띄지도 않았을 테고 수명을 좀 더 오래 보존하며 뿌리까지 뽑힐 일은 없었을 것이다.
모발계에서 하얀 털은 오래 살아남지 못한다.

사실 난 건조한 기후에 약하다.
피부가 약해서인지 습한 감정의 날씨가 잘 맞는다.
그래서 제주로 가면 좀 더 편안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면 흰머리카락도 뽑지 않을 생각이다.
처음엔 잡초 뽑듯이 뽑으려 했으나 자라나는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 나이만큼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천천히 늙고 싶다.
난 아직 검은 머리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