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마지막은 제주에서

낮가림 2022. 6. 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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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만 모아서




방금 친구와 카톡으로 대화하던 중에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넷플릭스에서 마지막 시즌이 나온, 기묘한 이야기 4의 전반부 마지막화를 보고 있었다.
사실은 어제도 보고 있었고 피곤함에 눈을 감았는데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오늘도 퇴근 후에 집에서 마지막화를 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러닝타임이 영화 한 편 분량인 1시간 40분 정도 된다.
친구는 아직도 보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재미있는 건 길게 끌어본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그래서 왕좌의 게임 결말을 보지 않았냐고 내게 다시 물었다.
그렇다.
나는 왕좌의 게임 마지막 시즌 마지막화를 왜 아직도 못 보고 있을까?
이미 몇 년이 지난 시리즈이지만 한때 내가 가장 열광했던 판타지 드라마이다.
반지의 제왕 이후로 가장 재미를 느꼈던 판타지 시리즈다.
결말이 별로라는 말들은 들었다.
그렇지만 그건 상관없다.
나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보지 못하고 있다.
마지막화를 끝내면 정말 이야기가 끝이 났다는 허무함 때문일까?




반지의 제왕 때도 그랬다.
엔딩 롤이 올라가며 주제음악이 나오고 3년간의 길고 긴 여정이 끝나감에 가슴이 울렸다.
그리고 몰려오는 알 수 없는 허무함도 있었다.
세편 모두 재미있고 훌륭한 이야기이지만 내가 최고로 뽑는 이야기는 신화와 여정의 시작인 반지원정대이다.
호빗족인 프로도와 톰을 주축으로 간달프와 아라곤 등이 반지원정대를 결성해 절대반지를 던져버릴 모르도르로 향한다.
나에겐 항상 그 시작이 가장 아름답고 재미가 있었던 것 같다.
제임스 본 시리즈도 첫 화인 본 아이덴티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매트릭스도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알아차리고 절대자가 되는 그 시작이 가장 경이로웠다.

영화와 드라마를 비교하기는 약간 무리가 있지만 나는 꽤나 많이 마지막화를 시청하지 않은 드라마가 많다.
거의 국민드라마 급이었던 도깨비도 마지막화를 보지 않았다.
가슴 아픈 대작인 미스터 선샤인도 마지막화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인기가 많았거나 혹은 인기가 없었던 여러 드라마의 끝을 보지 않았다.
왜였을까?
끝을 보면 그 세계관이 무너지는 심정이 들어서일까?
혹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이야기처럼 나 혼자 상상하는 걸까?




끝을 본 이야기도 있다.
방영된 지 시간이 좀 흐른 '나의 아저씨'.
내 인생 드라마 중 가장 애정 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지안의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나에게 지안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현실에 실제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지금 어딘가에도 지안의 예전 모습처럼 처절하게 냉대받고 무시받으며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젊은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결국에는 도움의 손길을 내어준 인연들 때문에 지안의 마지막 모습처럼 웃으며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결말이 나의 약한 멘탈을 위로해줬다.
그 따뜻한 끝 때문에 작가와 연출 스탭 그리고 배우들에게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런 연유로 나는 가수 아이유를 배우 이지은이 아닌 나의 아저씨 이지안으로 제일 먼저 인식한다.




어쩌면 끝이 해피엔딩이 아닐 거라는 두려움일까?
고통받던 인물들의 마지막이 결국 죽음이거나 더 나아지지 않는 삶이라는 혹은 희생이라는 결말이 나에게 마지막화 거부증을 불러온 것인지도 모른다.
배우의 삶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를 따라가고 가수는 자신이 부른 노래대로 인생이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비슷한 삶을 살아갔다.
나 역시 보고 듣는 이야기와 노래에 생각과 감정이 쉽게 동기화되고 빠져드는 편이다.
나의 감정이 우울해지고 그 감정이 성격이 되고 그 성격이 내 삶이 되어 비참하고 외로운 이야기의 실제 인물이 되어버리는 새드엔딩.
그런 끝을 원하지 않기에 내가 끝을 끝내 보지 못하는 것이다.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의 마지막에서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안녕을 고한 것만큼 타노스의 죽음도 나에게는 슬픈 이별이었다.
길고 긴 마블 시리즈에서 종종 존재감을 드러낸 캐릭터였고 그 신념만큼이나 행동력에서 배울 것이 많은 우주의 지배자이자 농부인 보라색 스승이었다.
타노스는 정말 죽었을까?
닥터 스트레인지가 보고 온 엄청나게 많은 미래 속의 타노스는 결국 목적을 이루어낸다.
여기서는 아니어도 저기서는 된 것이다.
셀 수 없는 멀티버스 안에서 수많은 삶의 가지치기를 이루어내며 상상할 수 없는 결말의 끝들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만약 타임 스톤을 가지고 있다면 또 수없이 많은 엔딩들이 생겨나겠지.

이렇게 생각하자.
이야기의 끝에서 내가 애정 했던 캐릭터가 슬픈 결말을 맞더라도 또 다른 멀티버스 속에서는 행복한 삶의 끝을 보고 있다고.
그래서 말이 나온 김에 넷플릭스로 미스터 선샤인의 마지막 두 편을 시청 중이다.
이미 알고 있는 역사의 비극이기에 누군가는 죽어야 한다.
그들의 죽음에 감정의 파도가 내 마음을 친다.
하나씩 한편씩 내가 보지 못했던 이야기들의 마지막화를 보려 한다.
나도 참 이상한 사람이다.
끝만 모아서 보는 사람.

지금의 나와 나의 끝까지는 얼마나 남았을까?
시간과 차원을 넘어 물리적인 영원히 늘어나는 줄자로 재면 길이가 얼마나 나올까?
나의 끝에는 제주가 있을까?
제주에서 눈을 감고 있을까?
눈을 감은 후 어두컴컴해진 완전한 어둠 속에 나만 볼 수 있는 내 인생의 엔딩 롤이 뜬다면 어떤 모습일까.

주연 ㅡ 나
조연 ㅡ 배우자 . 가족 . 친구들
그 외에 인생에 도움 주신 분들 ㅡ 누구누구
짧지만 스친 인연들 ㅡ 길 가다 스친 누구 .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누구누구

그 후 다음 생에 다시 만나 그들에게 은혜를 갚거나 알아볼지도 모른다.
전생에 길 가다 스친 서로 얼굴 한번 마주 봤던 사이라고...







아 혼 빠져나가기 전에 잠깐만.
생각해보니 제주도도 대한민국의 거의 끝이다.
그냥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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