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여름.
제주시 구좌읍 제주가 좋아서 펜션에 묵고 있었다.
저녁은 야외에서 먹기로 했고 하나로마트에서 사 온 회와 소고기, 새우, 컵라면을 늘어놓았다.
차가운 회와 방금 불에 익힌 따뜻한 소고기와 새우.
이 조합만으로도 너무나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하지만 불청객이 있었으니 제주의 어둠을 희석시키던 작은 야외 불빛에 모기떼가 몰려왔고 식사 내내 그들에게 식사를 당해야 했다.
피를 뺀 회와 소고기를 먹었지만 모기들은 신성한 식사 의식에 관심 없다는 듯 우리의 피를 노렸다.
서둘러 의식을 마무리하고 펜션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재빨리 모기장이 쳐진 문을 닫아 결계를 쳤다.
정신을 차려 바깥을 보니 밤은 더욱 짙어졌고 어둠은 결계를 넘어왔다.
우린 지치고 배부른 몸을 이끌고 계단을 올라 숙소로 피신했다.
설거지와 정리를 마치자 불빛 하나 없는 창밖의 모습이 너무나 창백해 보였다.
하루의 피로를 샤워로 씻어 내리고 눅눅한 방의 공기에 에어컨을 작동시켰다.
난 편한 자세로 침대에 올라가 않았고, 그는 방바닥에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난 리모컨을 만지작 거리며 목요일 밤에 하는 심야 괴담회를 보기 위해 채널을 돌렸다.
아... 그러나 제주도는 지역방송을 송출하고 있었다.
심야 괴담회는 볼 수 없었다.
제주도 일정 중에 목요일 밤, 심야 괴담회를 생방으로 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에어컨의 찬 공기와 허전함이 같이 밀려왔다.
하루의 끝맺음을 망친 것 같아 아쉬웠다.
우리에게 달라붙던 모기들도 결계 저편에서 이만큼 아쉬웠겠지...
방바닥에 누워있던 그는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었다.
이방 안에 깨어 있는 건 나와 TV, 에어컨뿐이었다.
하루의 피곤함이 조금씩 밀려온다.
몽롱한 와중에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고 또 리모컨으로 온도를 올린다.
나는 누워서 손가락으로 이들을 조종하는데 나를 움직일 리모컨은 어디에 있을까?
눈꺼풀을 단계별로 무겁게 해 놓으면 플러스, 마이너스 버튼으로 쉽게 잠들 수 있을 텐데.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깨어 있는 셋 중에 내가 제일 먼저 잠들 것 같다.
채널이 천천히 하나씩 바뀌고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프리한 19라는 방송이었고 귀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난 있는 힘껏 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버튼을 눌러 소리를 높였고 앉은 자세로 조금씩 침대 끝으로 이동했다.
나는 비로소 제주의 깊은 밤 어두컴컴한 이야기를 마주 할 수 있었다.
동네 횟집에서 그와 만나 대화를 하던 중에 그때의 일이 테이블 위로 올려져 새로운 안주거리가 되었다.
방바닥에서 자고 있던 그는 채널이 계속 바뀌는 소리에 살짝 잠이 깼다고 한다.
고개를 살짝 들어 그가 본 풍경은 거대한 통창으로 보이는 검푸른 하늘과 방안을 쳐다보는 듯한 검은 숲.
TV에서 들리는 음산한 소리와 귀신의 모습.
그리고 침대 끝에 앉아 고개를 빼들고 집중하고 있는 내 모습에 소름이 끼쳤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아... 깨어 있는 건 넷이었구나라고 생각했다.
제주의 무서운 밤.
그에겐 두 번째였고 나에겐 아니었다.
요즘 가장 많이 나를 찾아오는 생각은 무엇이 나를 제주로 이끄는가?이다.
내 마음과 생각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다면 주의 깊게 관찰하고 지켜봐야 한다.
이 블로그도 나의 제주에 관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고 그 장소에 다시 드나들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그날의 나의 감정과 행동들이 지금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끼쳐서 제주를 가까이하는지 알고자 한다.
제주로 가기 위해선 나의 일이 필요하고 나와 닮은 브랜드가 있어야 한다.
먹고사는 거 외에 내가 힘들 때 기댈 수 있고 위로가 되어줄 브랜드.
나의 감정이 들어간 그 무엇.
아직은 자세한 묘사가 힘들지만 이 블로그를 통해서 끝을 볼 것이다.
살면서 알게 된 건 어둡고 밝지 않은 그 무언가가 나의 성향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내 장난감이 되어 줄 브랜드에 그 불길함을 한 방울 떨어뜨리려 한다.
어쨌든 제주가 관련되어 있고 이 블로그도 제주 블로그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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