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물이었다.
식물을 심는 일은 꽤나 집중을 필요로 한다.
식물의 앞을 보아야 하고 나에게 등 돌리지 않은 얼굴을 찾아서 다듬어야 한다.
찢어지고 상처 입은 잎을 잘라주고, 햇빛을 가리는 오래된 잎과 바람의 길을 막는 울창한 가지를 잘라 길을 내어준다.
조심히 식물과 플라스틱 화분을 분리하고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히 밑을 받쳐서 준비해 놓은 이쁜 화분에 옮긴다.
식물이 흔들리지 않도록 배수가 잘되고 무게감이 있는 흙을 골고루 화분에 채워 넣어 중심을 잡아준다.
양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서 빈 공간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흙 위에 마사를 올려 전체적으로 정리를 한 후 물을 뿌려서 잎사귀의 먼지와 화분의 흙을 씻긴다.
물구멍으로 물이 빠지면 들어서 바람과 햇살이 지나다니는 장소에서 안정을 시킨다.
어제와 오늘 갑자기 시간이 많이 생겨서 소중한 지인의 집에 선물할 식물들을 심었다.
아무래도 나의 관심사가 제주이다 보니 내가 제주로 내려가면 마당에 심을 식물 위주로 고르게 됐다.
제주에서 자라는 야자나무와 과실수 등을 난 정말 좋아한다.
특히 귤나무와 레몬나무 등은 꼭 심어서 과실을 맛보고 싶다.
중부지방은 식물들의 월동이 되지 않아서 열대식물들이 얼어 죽지만 남부는 어느 정도 기후가 맞아 계속 성장한다.
그래서 나만의 작은 정원을 꾸미고 싶은 소망이 있다.
비교적 사이즈가 있는 식물을 파는 옆 하우스로 넘어가서 코코넛 야자를 골랐다.
코로나가 심각할 때는 수입이 모두 막혀있어서 들여올 수가 없었던 식물이었다.
인도네시아에서 오랜만에 건너온 코코넛 야자를 어제 가져와 토분에 심었고 오늘은 청 레몬이 8알 달린 레몬나무를 가져와 심었다.
파파야 나무도 맘에 들었는데 토요일이라 일찍 퇴근하셨는지 사장님이 보이지 않아 아쉽게도 고를 수가 없었다.
꽃차 기사님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식물을 넘겨드린 후 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지인이 너무 이쁘다며 좋아했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식물을 심는다는 것은 묘한 일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살아있는 생명체를 내 손으로 새 옷을 갈아입혀주는 것이다.
소리 내고 움직이는 동물들은 알아서 물을 찾아마시고 밥을 달라고 표현을 한다.
앉아있는 자리가 불편하면 스스로 최적의 장소를 찾아 움직인다.
그러나 식물은 그럴 수가 없다.
물을 줘야 하고 적당한 장소를 찾아주어야 하며 벌레를 잡아줘야 한다.
야생이라면 스스로 살 길을 찾겠지만 땅의 힘을 받지 못하는 작은 화분 속의 식물들은 같이 사는 인간의 절대적인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한다.
때를 놓쳐 말려 죽이거나 강한 햇빛에 식물이 검게 타버려서 죽은 때도 많았다.
그렇게 나는 체험으로 식물의 살고 죽음을 목격했다.
너무 부족해도 죽고 너무 과하게 넘쳐도 죽는다.
식물이 자라면서 빛의 부족함으로 줄기가 길고 연약하게 웃자라는 경우가 많다.
나는 그럴 때 다시 단단하고 이쁜 수형을 잡기 위해 두꺼운 부분에서 댕강 잘라버리고 가지를 정리한다.
시간은 걸리지만 식물에게도 좋은 일이다.
사람도 성장하며 생의 한 구간에서 충격을 받거나 자아의 상실로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연약한 모습을 보인다.
나도 그런 일들이 많았고 과감하게 그 일이 생겼던 기억을 거슬러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을 하고 납득한 후 받아들인다.
나의 부족함이 아니라 상황이 그러했음을 깨닫는다.
사건이 해결되면 나약함이 가지치기되고 난 다시 단단히 자라게 된다.
나는 식물을 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반성을 한다.
주식의 대가 워렌버핏의 투자원칙이 첫째가 잃지 않는 것.
두 번째도 절대로 잃지 않는 것이라면, 나에게 식물을 키우는 원칙은 첫째도 둘째도 모두 죽이지 않는 것이다.
죽지만 않으면 오히려 더 그럴듯한 개성을 가진 수형의 식물이 된다.
농장의 하우스 안에서 자란 식물들은 모두 적당한 환경을 가지고 성장한다.
적당한 빛, 적당한 온도, 적당한 물.
모든 게 적당하기에 중간의 어려움 없이 빠르게 성장하고 시장으로 팔려 나온다.
그리고 여러 유통단계를 거쳐 마침내 흩어져 여러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적당함이 존재하지 않는다.
숙련된 식물 애호가가 아니라면 모든 게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마침내 그 장소에 맞는 모습으로 수형과 색깔이 변한다.
같은 하우스에서 자랐지만 서로 다른 벌을 받는 장소로 흩어져서 전혀 다른 모습이 되는 것이다.
사람 또한 환경에 따라 척추가 휘고 손목의 모양이 다르며 얼굴의 표정이 잘 지어지지 않는다.
근심 걱정과 장소의 빛에 따라 내부와 외부환경의 요인으로 낯빛이 변한다.
식물을 잘 기르는 일은 자신을 돌보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나는 반대로 광활한 제주의 자연이 나를 지켜주고 길러주기를 원한다.
크거나 작은 잎들이 나의 피부를 만져주며 에너지를 전달해주기를 원한다.
제주는 살아있는 생명체고 나의 관심을 서울이라는 틀에서 분리하고 제주의 어느 곳에 심어버렸다.
나의 찢어지고 멍든 상처를 치료해주고 상상을 막는 의심과 걱정의 가시와 가지를 잘라주었다.
먹물 구름을 끌고 와 물 한 바가지를 부어서 나의 먼지를 씻겼고, 바람과 햇살이 만나는 한적한 어느 장소에 나를 앉혀놓았다.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지 못하고 제자리걸음 하는 식물 같은 내 인생을 제주가 돌봐주려 한다.
땅의 힘을 빌려 앞으로 나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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