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사람이 돼야지.
나는 발걸음이 빠른 서울 사람이다.
급할 이유가 없는데도 속도를 낸다.
주위의 풍경은 너무 익숙해서 눈길도 주지 않는다.
내가 있을 곳은 나의 일터고 나를 이동시켜줄 운송수단에 올라타야 한다.
서울은 빠른 도시다.
출근길 속도에 의식하지 못했던 카페가 퇴근길 느린 걸음에 인형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보세 옷을 팔던 옷가게는 케이크 디저트 가게로 바뀌었고 한창 잘 나가던 큰 횟집은 문을 닫았다.
불과 얼마 전인데 빠르게도 망하고 생기고 망하고 생긴다.
동네에 정육점만 10곳 정도가 되고 미용실, 이발소, 바버샵 등 헤어숍은 다 기억 못 할 만큼 동네 이곳저곳에 문을 열었다.
사람이 필요 없는 무인 샵도 많아졌다.
바쁜 시간이 지나고 고개를 돌려 천천히 둘러본 나의 동네는 너무 달라져있었다.
너무 바쁘게 사느라 눈길 한번 안 줬더니 싹 다 바뀌어 버렸다.
근데 나도 바뀌어 있었다.
제주 생각에만 빠져있었던 나는 서울은 허상이라 생각하며 살아버렸다.
어차피 이곳에 나의 집은 한 채도 없으며 나의 가족과 친구들 외에는 온기를 나눌 사람도 없다.
서울은 먹고살기 위해 돈을 버는 작업장이다.
좋은 기억 찾기가 금 캐기보다 어려운 곳이 서울이고 나의 동네다.
어떻게 여기까지 살아왔는지 신기하다.
잘 기억이 안 난다.
언제부터였는지 일한 대가로 받는 한 달치 월급봉투가 은행계좌의 숫자로 찍혔다.
손바닥에 두둑하게 잡히던 돈의 촉감과 느낌 그리고 냄새가 사라졌다.
지폐 개수를 세던 설렘과 긴장감이 사라졌다.
이제는 뒤에 붙은 0만 잘 세면 된다.
고용주와 노동자의 돈을 주고받는 중간과정이 사라지니 편해진 것 같으면서도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느낌이다.
통장에 찍힌 아날로그 0을 보는 것도 새로운 맛이었다.
이제는 동네의 은행도 대부분 사라졌다.
더 이상 사람들이 찾지 않는 사람과 사람의 대면 시스템.
3년 후의 동네는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
나는 걸음은 빠른데 세상의 속도에는 아직 낯설다.
조금 천천히 걷거나 멈춰 서서 세상의 속도를 지켜볼걸 그랬다.
그때 멈춰서 지켜봤다면 돈의 흐름도 보았을 테고 지금 이렇게 힘들게 일하지도 않았을 텐데.
고용주가 통장으로 돈을 보낼 때, 인터넷 뱅킹이 생겼을 때 기회를 알았어야 했다.
너무 빨리 걷느라 지금 당장의 돈벌이를 향해 달려가느라 반대편에서 다른 세상이 나에게 두 팔 벌려 오는 것을 지나쳐 버렸다.
그때를 반성하며 지금은 새로운 것들에 과감하게 투자를 하고 도전하려 한다.
내가 빨리 걷는 것보다 시대의 흐름에 탑승하면 더 빨리 목적지로 도착한다는 것을 나이를 먹고서야 뒤늦게 알아버렸다.
이제 새로운 도전과 과정을 통해 서울에서 제주로 넘어가려 한다.
천천히 걷고 빠르게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삶이 깃든 땅.
제주에서는 그동안 묵혀두었던 소망을 실현하고자 한다.
서울의 땅에서는 새싹도 내밀지 못했던 그 소망을 다시 제주의 땅에 심을 것이다.
매년 제주에 가면 전에 가봤던 동네를 찾아간다.
그리고 무엇이 바뀌었는지 눈으로 확인해본다.
그때 그 모습 그대로 큰 차이가 없음을 확인하고 빙그레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그런 사람인가 보다.
느린 속도로 천천히 변화하는 모습에 기뻐하는 그런 사람.
그런데 왜 그렇게 빨리 걷기만 했을까.
나는 발걸음이 느린 제주사람이 될 거다.
급할 이유가 없으니 여유를 부린다.
주위의 풍경이 달라지는 모습에 눈길을 떼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있을 곳은 나의 제주집이고 나를 이동시켜줄 운송수단에 올라타야 한다.
제주는 천천히 살아가는 땅이다.
하늘을 걷고 물 위를 걸어 제주에 다다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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