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활주로는 제주로

에어컨 바람과 제주

낮가림 2022. 7. 9.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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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여름처럼...






나는 집에 에어컨이 없다.
무더운 여름의 한 낮과 눅눅한 열대야 밤에는 딱 오징어 숙회처럼 말랑말랑 해져있다.
몸이 그렇게 뻗어버리니 정신이 말짱 할리가 없다.
천장만 쳐다본 채로 어서 온도가 식기를 기다릴 뿐이다.
가끔 너무 더울 때는 어느 겨울날, 출근길에 체험한 가장 추운 한기를  기억과 감각 속에서 꺼내온다.
짧은 순간이지만 영하의 온도를 몸속에 비축한다.
나의 뇌는 겨울과 여름을 오가며 계절에 속고 또 속는다.

머리 위에는 벽걸이 선풍기가 돌아가고 바닥에는 써큘레이터와 휴대용 무선 선풍기가 바람을 불러오고 있다.
3대가 나를 둘러싼 채로 바람을 불어낸다.
에어컨의 냉기보다는 약하지만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대니 기분이 좋다.
눈만 감으면 바로 잠에 들것이다.




나에겐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
제주에서 집을 구하면 여름 내내 에어컨을 틀어놓는 것이다.
추워도 상관없다.
담요를 덮고 따뜻한 커피를 마시면 된다.
그러다가 창문 밖으로 커다란 야자수 이파리를 바람이 치고 지나가면 밖으로 뛰쳐나가 온몸으로 바람을 즐길 것이다.
아 생각만 해도 시원해진다.




제주로 떠난 두 번의 휴가에서 3곳의 숙소를 이용했고 모두 에어컨을 쌩쌩 틀어놓고 지냈다.
한 번은 내가 얼었고 두 번째는 친구가 얼었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오징어 숙회처럼 말랑말랑 해지는 것보다 냉동참치의 딴딴함이 더 좋다.
올해 제주 여름휴가는 숙소를 두 군데로 예약했다.
체크인하는 순간부터 실내에서는 에어컨의 냉기를 실외 베란다에서는 제주의 자연바람을 즐길 것이다.

그때는 나의 뇌를 속일 필요가 없다.
여름을 여름처럼 즐겨야지.
에어컨의 시원한 온도를 몸속에 비축해야지.
언제든지 더위에 지친 이에게 냉기를 나눠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